너는 내게 부르짖으라(예레미야 33:1~9)
예레미야 선지자는 북쪽 이스라엘이 망하고 약 100년이 지나서 남쪽 유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망했는데 남유다도 똑같이 망하는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울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높은 산에서 우상 숭배 하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란죄를 범하던 북이스라엘이 그렇게 망했는데 우리 남유다도 똑같이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의 길과 행위를 고치고, 터진 웅덩이 파는 인생을 고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제라도 하나님 앞에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이제라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간절히 외쳤어요.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받은 말씀을 눈물을 흘리며 유다 백성들에게 전할 때 예루살렘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예레미야 11장 21절입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아시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살려주셨어요. 귀에 달콤한 말만 해야지 왜 듣기 싫은 소리 하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0장 2절도 우리 같이 읽습니다.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
제사장 바스훌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때렸어요. 목에 채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성전 문 위층에 가둬 버렸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두려고 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32장 2절도 우리 같이 읽습니다.
“그때에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혔으니.”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시위대 뜰에 있는 감옥에 가두어 버렸어요. 백성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하고 제사장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때렸으며 왕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어요.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어요.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이 안 들렸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몰랐어요. 여전히 높은 산에서 우상 숭배 하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란죄를 범하고, 그게 재미있고 좋으니까, 그 육체의 쾌락을 놓을 수가 없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던 거예요.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망하는 사람들의 귀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안 들립니다. 유다 백성들이 망하는 길로 가고 있을 때 그들의 귀에 하나님 말씀이 안 들렸어요. 유다가 망하려고 하니까 그때에는 하나님 말씀이 들리질 않았어요. 하나님 말씀 안 들리는 것이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아요.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예레미야 33장 1절을 보십시오. 우리 같이 읽습니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는 감옥에 갇혀 있어요.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하나님 말씀이 또 들려요. 이 차이를 아셔야 돼요. 망하는 사람들의 귀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안 들립니다. 아무리 전해도 안 들어요.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의 귀에는 하나님 말씀이 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아셔야 돼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고, 물이 없어 갈급함이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기갈 상태에 빠지는 거예요. 2024년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축복하기를 원합니다. 2024년도에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를 붙든다고 말씀했어요. 하나님 말씀 하나 붙들어요. 말씀이 들리니까 꿀송이보다 더 달콤한 말씀을 붙들고 살아요. 그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시편 1편에 복 없는 사람은 세 가지를 붙들어요. 악인들의 꾀를 붙들어요. 죄인들의 길에 서 버립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털썩 앉아버립니다. 그래서 망하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말씀이 안 들리니까, 그런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에 안 들리면 바람에 나는 겨처럼 이리 저리 뒹굴어요. 악인들의 꾀를 따라가고, 죄인들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그렇게 살다가 결국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거듭거듭 말씀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2024년도 여러분 귀에, 여러분 심령에 하느님의 말씀이 들려서 여러분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사람 한 사람도 되지 말고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늘 푸르고 청청하고 시절을 따라 열매 맺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 듣고 영혼이 건강해지기를 바랍니다. 영혼이 미소 짓고, 날마다 영혼이 기뻐 뛰며 춤추는 그런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레미야 32장 2절 말씀 다시 보십시오.
“그때에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혔으니.”
아무리 하나님 말씀 전해도 백성들이 안 들어요. 결국 예레미야 선지자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눈물만 흘러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이미 에워싸고 있다는 말입니다. 멸망이 눈앞에 와 있어요. 심판이 가까이 와 있어요. 그런데도 예루살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요. 여전히 높은 산에서 우상 숭배 하고 푸른 나무 아래서 음란을 즐기며 그렇게 산다는 말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감옥에 갇혀 있으니까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눈에서 눈물만 흐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그럴 때 있지 않습니까? 눈에서 눈물만 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고, 그럴 때 우리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레미야 선지자는 감옥에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심판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눈에서 눈물만 흘러요. 그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을 오늘 우리도 받습니다. 그 말씀을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야, 너 지금 감옥에 갇혀 있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그러나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어. 나에게 부르짖어라. 부르짖을 수 있잖아. 너 그것만 해도 돼. 나에게 부르짖어라. 너는 나에게 부르짖을 수는 있잖아. 그것만 해도 충분해.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크고 은밀한 일을 내가 나타내 보여주마.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크고 놀라운 일은 내가 이룰 것이다. 일을 이루는 나 여호와가 이루어 낼 것이다.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우리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받아 새해는 어느 해보다도 더 많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기 ‘부르짖다’가 히브리어로는 ‘카라(קְרָ֥א)’라는 동사입니다. 부르짖다(cry out)는 단어에는 물론 ‘울부짖다, 절규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큰소리로 외치다’라는 뜻도 물론 있어요. 그러나 여기 ‘카라’라는 동사는 ‘부르다’라는 뜻인데 ‘초대하다’라는 뜻으로도 많이 쓰여요. 그리고 ‘선언하다, 선포하다’라는 뜻으로 많이 쓰여요.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것은 ‘크게 고함지르고 절규하면서 외치다’라는 뜻도 있지만 사실은 그런 뜻보다는 ‘하나님을 내 삶에 모신다’라는 뜻이에요. 하나님을 내 인생에 초대한다는 거예요. ‘하나님, 나 혼자 살 수 없어요. 하나님 내 삶 속에 오셔서 나와 함께해 주세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을 초대하는 거예요. 하나님 모시는 거예요. 그게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 속에 오셔서 나와 함께해 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눈물만 흐릅니다. 하나님 내 삶 속에, 내 인생에, 우리 가정에 오셔서 하나님이 함께해 주세요. 하나님을 초대하는 게 부르짖는 거예요.
그리고 동사 ‘카라’는 ‘선언하고 선포하다’는 의미가 있어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은 살아계신다고 선언하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께 부르짖는 거예요. 여러분도 2024년에 하나님 앞에 때로 울며 부르짖고, 절규하는 기도도 올리시되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고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여러분 삶에 초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여러분의 인생에 함께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모셔드리는 거예요. 내 인생에 하나님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 살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거예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선언하고 선포하는 것이 부르짖는 거예요.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크고 은밀한 일을 드러내어 보여주실 줄 믿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850 대 1의 싸움을 했습니다.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총 850명이죠.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 혼자예요. 그때 그 싸움을 할 때 엘리야 선지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들은 너희 신께 부르짖어 보라.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때 ‘부르다’는 단어가 동사 ‘카라’예요. 바알의 선지자들은 바알 신의 이름을 불렀어요. 아세라 선지자의 이름도 불렀어요. 그런데도 아무 대답이 없었어요.
그래서 부르짖는다는 것은 크게 소리 지른다는 뜻보다는 사실은 누구를 찾느냐, 누구를 더 신뢰하고 의지하느냐, 누구 편에 서서 누구와 함께 살아가느냐, 거기에 더 방점이 있어요. 여러분, 새해에는 꼭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편에 서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선포하고 꼭 하나님과 깊이 동행하면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33장 3절을 다시 보세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무슨 약속입니까?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시는 약속입니다. 그러면 크고 은밀한 일은 무엇입니까? 1차적으로는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가겠지만, 기적같이 유다 백성들의 후손이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이에요. 1차적으로는 기적 같은 일, 크고 은밀한 일이 일어나는데요, 이제 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정복당해 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온다는 거예요. 그게 크고 은밀한 일이에요.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중에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감옥에 갇혀 있어도, 사역하다가 매를 맞아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목에 나무 고랑이 채워져도 견딜 수 있었어요.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신령한 은혜가 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영안이 열려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신령한 은혜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2024년에 그런 신령한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다 보니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져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죠. 여러분에게 정말 그런 신령한 축복도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땅에 3차에 걸쳐 포로로 끌려가는데요, BC 605년에 끌려가요 왕족과 귀족들이 먼저 잡혀갔습니다. 그때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BC 598년에 2차로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가는데요, 학자들 기술자들 이런 사람들이 끌려갔어요. 그때 에스겔 선지자가 거기에 포함돼 있었어요. BC 586년에는 유다 나라가 완전히 망하고 백성들이 다 포로로 끌려가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기까지만 본 게 아니에요. 언젠가는 다시 돌아온다. 이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적 같은 일을 행하시는데, 언젠가는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땅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70년 만에 돌아온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것도 보고 있었어요.
실제로 BC 538년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는데, 메대파사의 고레스 대왕이 고레스 칙령을 발표해요.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온 유다 사람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도 좋다는 칙령을 발표해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사 이런 일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거든요. 하나님께서 크고 은밀한 일을 실제로 역사 속에 그대로 실행하셨습니다.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께서 실제로 이루어 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BC 537년에 1차로 귀환합니다.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해요. BC 458년에는 2차로 귀환하는데, 학사 에스라를 중심으로 돌아와서 신앙을 재건해요. 영적으로 재건운동을 펼칩니다. BC 444년에는 3차로 귀환하는데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돌아와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거예요. 이 크고 은밀한 일은 실제로 역사 속에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자에게는 얼마든지 신비하고 놀라운 일들,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없는 일들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다음 크고 은밀한 일은 어떤 일이 있을까요? 오늘 우리에게 약속하신 크고 은밀한 일은 어떤 일일까요? 예레미야 33장 6절과 7절입니다.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할 것이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능히 얼마든지 우리를 치료하고 고쳐 낫게 해 주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믿고 부르짖어요. 이뤄집니다.
예레미야 33장 8절 같이 읽읍시다.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말씀했어요. 부르짖고 기도하면 우리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시고, 새 출발하게 하는 은혜를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33장 9절도 같이 읽습니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어떤 복을 약속하셨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기쁜 이름이 된대요. 다시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부르짖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십니다. 허물을 사하시고 새출발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께 기쁜 이름이 되도록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이 되도록 이끌어주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4년도에 부르짖고 기도하시는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고 치료를 받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허물이 사함을 받고 새출발하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기쁜 이름이 되고, 하나님께 찬성이 되며 영광이 되는 축복이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27편 1절에 있는 말씀 같이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돼요.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우리 가정도 든든하고,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이 나라 이 민족도 복을 받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7절 말씀도 같이 읽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러니 부르짖어야죠.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축원합니다. 문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는 말씀 받으면서 지금 입으로는 “아멘” 하지만 여기 실천할 사람 많지 않다는 거예요. 이게 문제예요. 실천해야 합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계획은 잘 세웁니다. 그런데 실천을 안 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보면 저도 뭐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어떤 친구는요, 학기가 바뀔 때마다 각도기를 사요. 그러고 맨날 동그라미를 그려요. 그래 갖고 아침 7시 기상, 7시부터 7시 30분까지 영어 단어 10개 외우기, 아침 먹고 학교 가기, 학교 가서 영어 문법 공부하기, 저녁 먹고 6시부터는 수학 10문제 풀기. 그런데 맨날 계획만 세워요. 그리고 어떤 때는 색을 칠해요. 잠자는 시간은 새까맣게, 아침은 빨갛게 칠해요. 그런데 실천을 안 해요. 그러면 소용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오늘 이 말씀을 받았다면 실천하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실천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크고 은밀한 일을 하나님이 나타내 보여주시는데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할 것이다.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다. 너희가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어요.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 더 부르짖고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2024년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새해에도 많이 힘들 겁니다.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아요. 우리 기도하고 좋은 일들만 있기를 바랍니다. 말하지만 새해에도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은 많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쩔 수 없어요. 모세는 태어날 때부터 죽은 목숨이었어요. 애굽의 파라오가 이스라엘 여인이 아들을 낳으면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그때 태어났어요. 태어날 때부터 환난이었어요.
기드온은 겁쟁이였습니다. 포도주 틀에 숨어서 밀 타작을 했어요. 이유는 미디안 사람들이 너무너무 괴롭히는 거예요. 농사 지어 놓으면 다 빼앗아 갔어요. 미디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너무나 힘들게 괴롭힐 때 그때 기드온이 용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돌멩이를 던져서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나라를 구하긴 했는데 그 시절에 블레셋 족속들이 너무 강해서 늘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침입해 오던 어렵고 힘든 시절에 다윗이 태어나 살았어요.
사르밧 과부는 형편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한 움큼밖에 안 남았습니다. 기름병에 기름도 이제 끝을 보여요.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서 구워서 먹고 나서는 이제 우리 아들과 함께 죽어야겠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형편이었어요. 룻은 남편도 죽고 가난한 시어머니 모시고 살아야 했어요. 남의 밭에서 이삭을 주워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인생이었어요.
그러나 여러분 성경에 보세요. 어려운 시대에 그들은 다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하나님을 찾았어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랬을 때 얼마나 위대한 인물로 쓰임 받았는지 성경이 기록하잖아요. 올 한 해 2024년도 만만하지 않고 힘든 세상이 될 겁니다. 그러나 우리 두려워하지 맙시다. 왜 우리가 부르짖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되잖아요. 부르짖을 수는 있잖아요.
“예레미야야,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네가 감옥에 갇혀 있는 건 내가 알아. 너는 부르짖기만 하면 돼. 그것으로 충분해. 크고 놀라운 일은 내가 이루어 주마. 일을 이루시는 여호와, 이를 성취하는 나 여호와가 크고 비밀한 일을 이루어 낼 것이다. 너는 부르짖기만 해라. 부르짖으면 된다. 부르짖기만 해도 돼.” 이 말씀을 오늘 우리가 받았는데, 우리 믿음으로 올 한 해는 정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고, 부르짖고 기도하기를 축복합니다.
어느 선교사님의 이야기, 우리 마음에 큰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오늘 여러분과 같이 또 나누길 원합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하나님의 강력한 부르심이 있어서 식인종 부족을 선교하기로 마음을 먹고 선교지로 갔어요. 식인종 부족에게 누가 가서 복음을 전해요. 누군가는 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부르시니까 사명 따라 식인종 부족 마을 속으로 들어갔는데요, 밤마다 무서워요. 밤이 되면 식인종 부족들이 찾아와서 집을 에워싸요. 큰 창을 하나씩 들고 밤마다 노려보는 거예요. 선교사님은 무서웠습니다. 사람인데 왜 안 무섭겠어요. 그래서 밤마다 하나님을 찾았어요. 하나님 나를 여기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시니까 내 생명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시오. 하나님 살아계심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했어요. 그랬더니 날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나요. 날마다 식인종들이 창을 하나씩 들고 와서 선교사님 집을 에워싸고 있는데요. 이상한 것은 밤마다 찾아오는데 날마다 그냥 돌아가는 거예요. 밤마다 찾아오면 또 돌아가고 밤마다 찾아왔다가 또 돌아가요.
그러고 나서 세월이 좀 흘렀어요. 이 식인종 부족의 추장을 만나게 됐는데 어렵게 통역을 해 보니까, 식인종 추장이 이런 말을 했대요. 궁금한 게 있다고, 당신 집 앞에 낮에는 없는데 밤만 되면 큰 창을 들고 서 있는 키 큰 사람이 누구냐고, 낮에는 없는데 밤이 되어 우리가 당신 집에 찾아가기만 하면 당신 집 대문을 탁 지키고 큰 창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밤마다 그냥 돌아갔는데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더래요. 그 말을 듣고 선교사님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대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셨구나. 하나님이 내 생명을 지켜주셨구나. 오늘 내가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 살고 죽음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담대하게 부족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놀라운 영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세요. 크고 은밀한 일을 내가 너에게 행하리라. 너는 부르짖어 기도해라. 여러분, 우리 올 한 해 어느 해보다도 더 많이 부르짖는 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몇 년 전에 여기 다산 신도시 지금지구에 종교부지가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 장로님들과 함께 종교부지를 다 둘러봤어요. 저쪽 종교부지를 다 둘러봤어요. 좋아 보였어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어요. 이 자리에 왔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없는 벌판, 잡초만 무성한 그런 광야 같은 곳인데 여기 와서 섰는데 가슴이 뜨거워지고 여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하나님, 여기 아니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 꼭 이곳을 주십시오.” 우리 장로님들과 부르짖고 기도했어요.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고 기도했어요. 그리고 드디어 우리가 입찰을 하고 공개 추첨을 하는 날이 되었는데 그날 새벽에 우리가 이 자리에 왔습니다. 여기 빈들이었을 때 우리 장로님들과 성도들이 이 자리에 와서 부르짖었어요. “하나님, 이 자리를 우리에게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부르짖었어요.
경쟁이 무려 100대 1이었어요. 쉬운 거 아니에요.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그런데 1차로 우리가 속한 그룹이 선택되고, 2차로 우리가 들어가고, 마지막 10명이 남았는데 마지막에 결과가 뜨는데 우리가 됐어요. 부르짖어서 된 겁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가 입찰을 받았잖아요. 이제 우리가 당첨돼서 여기에 예배당을 지을 수 있는 길이 열렸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캄캄했어요. 어떻게 건축하나? 얼마나 어렵던 시절인지 아시지요? 건축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어요. 코로나 사태로 얼마나 힘이 들었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설계도면을 그리고, 시공사를 선정하고 나서 너무너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는데, 기도 안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날씨가 어둑어둑해지면 혼자 이곳에 왔어요. 그리고 제가 여기 기도하려고 와 보면 바로 이 자리에 큰 바위가 몇 개 있었어요. 저보다 먼저 누군가가 와서 그 바위에 걸터앉아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고 있었어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곳에 이 예배당이 세워졌어요. 우리 예배당은 부르짖으며 세운 예배당입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 여기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우리 다산은혜교회를 더 크고 귀한 교회로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크고 비밀한 일을 하나님께서 나타내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갈수록 우리 한국 교회 현실이 어렵습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어요. 세상의 윤리 도덕과 가치관이 무너져 성경 이야기 하면 꼰대 소리 한다는 그런 시절이 되고 있습니다. 어려운 교회가 너무 많아요. 농어촌 미래자립교회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몰라요. 하나님께서 자꾸만 그런 꿈을 주셔요. 어려운 교회들을 보살펴라. 무너져가는 한국 교회를 살려라. 하나님께서 그런 꿈을 주셔요.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우리가 부르짖으면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크고 비밀한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꿈을 가지고 우리 하나님 앞에 더 부르짖어서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크고 비밀한 은혜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