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토록 빛나리라(다니엘 12:1~4)
범사에 기한이 있습니다.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습니다.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거둘 때가 있습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입니다. 우리 인생은 우리 마음대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생 끝내는 것도 우리 마음대로 끝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을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다 내려놓고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 마지막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다니엘 12장 1절 말씀 함께 읽읍시다.
“그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그때, 그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여기 ‘그때에’는 예루살렘 멸망의 날을 가리키고 우주 종말의 날을 가리키며 우리 개인의 마지막 그날을 가리킵니다. 마지막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천사장 미가엘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천사장이 일어납니다.
다니엘 12장 2절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마지막 그날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 빨리 오고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 늦게 온다는 차이는 있지만 마지막 그때의 그날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문제는 마지막 그때에 두 갈래 길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영생의 길과 영벌의 길로 갈라집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 순간은 오는데 마지막 그때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이것이 인생 최대의 문제입니다. 나에게도 마지막 그때는 오는데 그때 내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이것이 우리 인생 최대의 문제입니다.
신약 성경 히브리서 9장 27절에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니 아무렇게나 대충 살다가, 먹고 마시고 즐기고 살다가 죽어버리자, 죽으면 다 끝나는 거야. 그게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지은 죄인이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마지막 그때는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런데 죽고 나면 다 끝나는 게 아니에요.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다 서야 합니다. 그날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면 영생의 길로 갈 사람과 영벌의 길로 갈 사람으로 갈라집니다. 그것이 인생 최대의 문제입니다. 이제 인생 최대의 질문을 드립니다. 그러면 누가 영생의 길로 갑니까? 영벌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영생의 길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니엘 12장 1절 마지막 말씀에 해답이 있습니다.
“그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책에 기록된 자는 영생의 길로 가지만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영벌의 길로 가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 책은 무슨 책입니까?
요한계시록 3장 5절입니다. 우리 함께 읽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무슨 책이죠? 생명책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5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영생에 길로 갑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7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갑니다. 그런데 어린양의 생명책이라고 말씀했어요. 구약시대에 유월절 어린양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대속의 제물로 드려집니다. 구약시대의 모든 피의 제사는 신약시대 예수님 십자가 대속의 제사의 예표입니다. 구약시대의 성막은 구약의 복음입니다. 피를 가지고 성막에서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피 없이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려고 이 땅에 오셨어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어요. 흠 없이 오셔야 했습니다. 죄 없이 오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 몸에서 나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 몸에서 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입니다. 온전한 유월절 어린양입니다.
사복음서를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은 유월절에 맞추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고 유월절에 맞추어 유월절 그날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어요.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죄 없으신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우리의 죗짐을 다 짊어지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우리를 대신해 정죄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보혈의 값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으며 그 예수님이 구약 성경의 영원한 메시야 바로 그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구주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권세 하나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얻은 자는 생명책에 이름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 어린양의 생명책에 올라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으로이지 내 의지로 되는 게 아니에요.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돼요. 내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다. 이건 내가 구원받은 증거예요.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질 못해요. 우리처럼 진심으로 “주님!” 하는 이 말을 못 한다니까요. 이것은 성령님이 이미 우리에게 역사하신 증거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올라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있으면 영생의 길로 갑니다. 그러니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고 우리는 언제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인생 최대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 살면서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느냐, 많이 누리고 많이 가지고 사느냐,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인생 최대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인생의 마지막 그때는 누구에게나 오는데 그때에 영생의 길로 갈 것이냐, 영벌의 길로 갈 것이냐, 이것이 인생 최대의 문제입니다. 인생 뭐 있어? 그냥 먹고 마시고 즐기다가 끝내면 되지. 죽어버리면 다 끝이야. 그런 게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습니다. 조금 이후에 영생의 길과 영벌의 길로 갈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눈에 이 신비한 우주만물이 지금 보입니다. 오늘도 태양이 떠올라 온 세상이 밝아졌어요. 이 신비한 우주만물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이 우주는 이것을 만드신 분이 있기에 존재합니다.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세요. 이걸 일반계시라고 하죠. 특별 계시인 성경 말씀이 이 우주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말씀해요.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지으셨어요. 지으신 분이 있어서 이 만물이 존재하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 더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가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있어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래서 짐승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어요.
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이 있어요. 정: 하나님과 교감할 수 있는 감성이 있어요. 의: 뜻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 의지가 있어요. 짐승은 없어요. 짐승은 지정의가 없어요. 본능에 따라 움직여요. 그런데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특별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지정의를 지니고 있어요. 이것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데, 이 하나님의 형상은 인류의 시조가 죄를 범함으로 왜곡되고 삐뚤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에요. 그래서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알 만한 지식을 갖고 있어요. 하나님이 계신다는 지식이 있어요. 하나님을 느끼게 돼요.
누구라도 양심이 화인 맞기 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어렴풋이, 희미하게라도 다 인지하고 있어요. 그분이 누구일까? 자세히는 몰라도 그래서 마음에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런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살다가는 큰일 나지, 벌 받지, 천벌 받지, 지옥 가지,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지.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도 가끔 그런 이야기하고 그런 말 합니다.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주를 향한 기본적 인식이 있어요. 신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핑계할 수 없어요.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며,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어요. 우리 모두 하나님 앞으로 가야 하는 거예요.
인생이 마지막이 되면 하나님 앞에 가서 영벌의 길로 가느냐, 영생의 길로 가느냐,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예요. 인생을 잘 살았느냐 못 살았느냐가 이 세상에서 결정 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순간에 판명 납니다.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은 영생의 길로 가는 사람이에요. 여러분은 영생의 길로 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많은 분의 마지막을 봐요.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죽음의 전조 현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지켜본 바는 대체로 이렇습니다. 몸의 기능이 떨어져요. 스스로 잘 못 움직여요. 최근 들어 ‘내가 내 몸 움직이는 게 힘들다’ 그런 분 있어요? 조심해야 돼요. 대체로 몸에 기능이 떨어져 잘 못 움직여요. 일어설 때도 “아이고” 그러고, 앉을 때도 잘 못 앉고 그럽니다. 그러다가 혈액순환이 잘 안 돼요. 혈액순환이 안 되니까. 얼굴이 하얗게 창백해져요. 옆 사람 한 번 봐요. 얼굴에 핏기가 없고 하얀 그런 사람 있지 않나요? 혈액순환이 안 되니까. 얼굴이 창백해져요. 그다음에 호흡이 가쁘고 숨 쉬는 것을 자꾸 힘들어합니다. 그러다가 자꾸 잠을 자기 시작해요. 어제 10시간 주무셨는데 오늘 또 주무시네. 그럼 이제 천국 갈 준비를 하고 계신 거예요. 많이 주무셨는데 오늘 또 잠자요. 그러면서 자꾸 기억력이 흐려져요. 사람도 잘 못 알아보죠. 선망 증세가 나타나요. 뭐가 보인다고 말합니다. 눈에 뭐가 보여,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해요. 꿈에 뭐가 나타나. 그런 이야기도 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몸이 차가워져요. 그리고 정말 마지막 순간이 되면 몸의 근육이 풀어져 내려앉습니다. 몸의 근육이 다 풀어지고 내려앉아요.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누운 키가 내려앉아요. 그게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맨 마지막 순간에는 사람이 누워 있잖아요. 얼굴 높이가 내려앉습니다. 그러면 이제 세상 떠날 때가 된 거예요. 제가 지켜본 바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는 기능이 있어요. 듣는 기능입니다. 청력은 남아 있어요. 아무것도 못 들으시는 거 같아도 임종 직전 옆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말 하는지 다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좋은 말을 해야 해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하고요, 가장 좋은 건 찬송을 불러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 신기한 것이 사람이 임종의 중간이 되면 오히려 더 커지는 게 있어요. 눈동자가 커집니다. 마지막 순간에 눈동자는 커지고 듣는 기능, 청력은 살아있어요. 듣는 기능은 끝까지 남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요한복음 5장 25절 함께 읽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청력은 끝까지 남아 있어요. 제가 볼 때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도 함께 읽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끝까지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 듣고 그 길로 따라가면 영생의 길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마귀 사탄의 속삭임을 듣고 따라가면 그건 영벌의 길이에요. 그 길로 가면 안 돼요. 마지막 순간에 눈동자는 왜 커질까요? 주님을 바라봐야 하니까 눈동자가 커지는 거예요. 여러분, 이 세상 살아있는 동안에도 여러분은 귀를 열어서 주님의 음성만 듣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마귀 사탄의 속삭이는 소리는 물리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살아 숨 쉬는 동안에도 믿음의 눈을 크게 떠서 주님만 따라가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세상을 사시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그때에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귀를 열어 주님의 음성만 들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믿음의 눈을 크게 열어서 주님만 보고 주님만 따라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주간에 이 지역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이 모였어요. 모여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거기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주일날 설교 제목을 길게 쓰시는 목사님이 있었대요. 설교 제목이 대체로 좀 긴 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사랑이 계명의 요약입니다.’ 이렇게 설교 제목을 길게 쓰시는 목사님이 계셨어요. 그런데 한 번은 목사님이 시편 23편을 설교 주제로 삼으시면서 설교 제목으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정하고 주보 만드는 사람에게 줬어요. 그러니까 주보 만드는 사람이 ‘우리 목사님이 실수하셨나 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뒤에 뭐가 더 있어야 하는데 목사님이 빠뜨리셨네’ 그러고 목사님께 전화를 했어요. “목사님, 주일 설교 제목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기서 끝나는데 뒤에 뭐라고 할까요” 하고 물었어요. 목사님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충분합니다. 이렇게 말했어요. 제목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거기까지만 하라는 것이었는데 그다음 날 주보를 보니 설교 제목이 이렇게 나왔어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날 설교를 들은 성도가 많은 눈물을 흘리고 큰 은혜를 받았대요. 목사님도 설교하시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거면 충분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랬다고 합니다. 성도들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 설교에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다. 그때는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때의 마지막 날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때에 정말 필요한 것은 여보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충분합니다. 사실 다른 건 필요 없어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무리 좋은 대궐 같은 집도 내 영혼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지는 못해요. 다 놓고 가야 돼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무리 좋은 자가용도 내 영혼을 태우고 가지 못해요. 나와 상관이 없어요. 마지막 순간에 필요한 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것만 필요해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정말 그런 거예요. 여러분, 믿음 생활 끝까지 잘하셔서 마지막 순간에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이 고백을 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끝까지 믿음 지키고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정말 그래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충분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정말 그거면 충분한 것입니다.
이제 다니엘 12장 3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지혜 있는 자가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난대요. 깜깜하다가 태양이 솟아오르면 온 세상이 밝아지잖아요. 그렇게 지혜 있는 사람은 그렇게 밝게 빛난대요. 여기 지혜 있는 자는 누굴까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정확하게 풀어서 설명하면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줄 아는 사람이에요.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줄 아는 사람이 지혜 있는 자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나요. 그리고 마지막 때에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여러분께 질문합니다. 옳은 데는 어디일까요? 하나님 앞으로입니다. 다른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한 사람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여기 옳은 길이란 영생의 길을 말해요. 영벌의 길로 가는 사람들을 영생의 길로 돌아오게 한 사람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난대요. 여러분,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셔서 여러분이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도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면 좋겠어요. 여러분도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얼마나 행복할까요?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이 되려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영벌의 길로 가는 사람을 영생의 길로 돌아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영생의 길로 가는 사람은 믿음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죠. 믿음은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에요.
혹 여러분 중에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나는 솔직히 아직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는 믿음은 부족하다는 분이 계신다면 사모하십시오.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교회 마당만 밟고 다녀서는 안 돼요. 예수님을 분명하게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영접해야 생명책에 이름이 올라가요. 교회 마당만 밟고 다녀서는 안 돼요. 나에게 분명하고 확실한 믿음이 없다면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니까 오늘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을 하나님 앞에 선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이 감동 감화하셔서 믿음이 우리 속에 옵니다.
여러분, 믿음 선물을 오늘 받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나를 전도해 줘서 내가 예수님 믿게 됐다. 그것도 성령님의 역사예요. 나는 태어나 보니 부모님이 믿는 분들이라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것도 성령님의 역사예요. 나는 안 믿는 사람인데 내 아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 아내 덕분에 나도 예수님 믿게 됐다. 그것도 성령님의 역사예요. 내 남편 덕분에 내가 예수님 맺게 됐다. 그것도 성령님의 역사예요. 길 가다가 누가 나를 전도해 줘서 내가 예수님 맺게 됐다. 그것도 성령님의 역사예요.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구나. 이 우주 만물은 만드신 분이 있어서 존재하는구나. 내가 죽으면 그분 앞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는 이야기구나. 그러면 예수라는 분, 그분을 나도 믿어야 하는 거구나.’ 이런 마음이 드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마음속에 그런 은혜가 있다면 성령님의 역사를 거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죄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뜻이에요. 예수라는 이름은 고유명사입니다. 예수라는 이름 속에 하나님 자녀가 되고 그 예수라는 이름 속에 영생의 길로 가는 힘과 비결이 있어요. 예수님 직접 말씀하셨어요. 나는 길이다. 진리다. 생명이다. 말씀하셨어요.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중에 성령님은 감동하시는 분, 예수님 믿는 것이 옳구나, 나도 예수님 믿는 믿음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지금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고 있는 분이 있다면 성령님의 역사를 거부하지 말아요. 마음의 문을 열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받아들입시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 다 분명하게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영생의 길을 나아가는 믿음의 백성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거 이거 그냥 되지 않아요. 교회 안 다니는 사람, 안 믿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주님으로 불러보라면 그렇게 못해요. 농담삼아 장난삼아는 할 수 있지만 우리처럼 예수님을 향하여 “주님” 하는 이 고백을 못 한다니까요. 이 고백은 성령님께서 하게 하셔서 하는 거예요. 이 믿음의 선물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가장 큰 선물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가장 복 있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있는 말씀 함께 읽읍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만드셨어요. 흙으로 사람을 빚어서 영이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서 사람이 영적 존재가 되었어요. 살아있는 존재가 됐어요. 그릇으로 비유하면 사람은 질그릇입니다. 흙으로 지어졌으니까요. 그릇의 종류가 많이 있는데, 금그릇도 있고 나무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잖아요. 이 질그릇은 가장 흔해요. 가장 보잘것없어요. 쓰다가 싫증나면 깨뜨리고 또 새로 만들면 돼요. 그릇 중에서 어쩌면 제일 하찮은 그릇이 질그릇일 겁니다. 그릇으로 비유하면 우리는 질그릇이라는 말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졌으니까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라서 흙으로 돌아가잖아요. 우리는 질그릇이에요. 그런데 질그릇과 같은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 우리 함께 읽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질그릇이에요. 그런데 우리 속에 보배이신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깨뜨려 버려도 괜찮고 발로 차버려도 괜찮아요. 그런데 보배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우리를 발로 걷어찰 수 없어요. 어느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어요. 이것이 복음이에요. 이것이 우리가 구원받는 비결입니다. 이게 구원의 원리예요. 이제까지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여러분 삶의 중심에, 여러분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이 주인 되어 여러분을 다스려 주시려고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지금 노크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거부하지 마세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받아들여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여러분 인생의 주인으로, 여러분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존귀한 자가 됩니다. 영벌의 길로 가는 사람이 아니고 영생의 길로 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서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기의 생명을 바치고 자기의 목숨을 바친다고 말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한때 인간의 기술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고 착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기술이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식량도 많이 만들어 내면서 인간 스스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꿈이 무너졌어요. 인간의 기술이 한 번에 수천만 명을 죽이기도 하는구나. 그래서 정신을 차리게 됐죠.
그렇습니다. 여러분 옳은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길밖에 없어요. 이 길만이 옳은 길이에요. 그래서 민주주의도 필요하고 경제가 힘 있게 일어나는 것도 필요한데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이 있고 나서 경제가 있어야 돼요. 복음이 있고 나서 문명이 있고 문화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 복음이 가장 소중합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전하면 지금도 침 뱉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면 지금도 돌 던지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의 죗짐을 대신해 십자가 지고 가실 때 사람들은 침을 뱉었어요. 돌을 던졌어요. 저 사람이 정말 유대인의 왕이냐?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는 주제에 우리의 왕이라고? 비웃고 조롱하고 침을 뱉었어요. 돌을 던졌어요. 지금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어요? 침 뱉고 돌 던지고 나무에 매달아 못 박아 죽이는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어요?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알지 못하여 지금 저렇게 살고 있나이다.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기도 속에 복음 속에 우리 인류의 희망이 있는 거예요. 다른 어디에도 희망이 없어요. 우리는 주님을 향하여 침 뱉고 돌을 던졌는데 주님은 기도하셨어요.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주님의 기도 속에 우리의 소망이 있어요. 다른 데는 소망이 없어요. 그 주님의 기도 속에 인류의 행복이 있어요. 기도 속에 우리의 구원이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만이 우리를 살립니다. 거기에 올바른 윤리 도덕이 있어요. 거기에 참된 가르침이 있는 거예요. 이 복음이 우리를 살리는 거예요.
우리나라 양화진에 가면 외국인 선교사 묘소가 있습니다. 수많은 선교사가 이 땅에 들어와서 풍토병에 걸려 죽고 핍박받아 죽고, 그러면 그들의 자녀들이, 후손들이 또 와서 이 땅에 복음 전하고 그래서 우리 민족이 이렇게 복을 받고 이 땅에 교회들이 이렇게 많고 오늘 우리가 복음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땅에 수없이 많은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고 이 땅에서 순교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 쓰임 받고 그렇게 살다가 가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거예요.
중국에 가면 상하이 근처에 쑤저우(蘇州)라는 작은 도시가 있어요. 거기에 쑤저우대학이 있는데, 영국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입니다. 그렇게 큰 학교는 아니지만, 거기서부터 퍼져나간 복음이 중국 땅에 얼마나 많은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었는지 몰라요. 1억 명 이상의 그리스도인이 중국 땅에 살아있습니다. 중국에 그리스도인이 너무 많아지니까 중국 공산당이 위협을 느껴서 지금 교회를 더욱 심하게 핍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6~7년 중국에 가서 신학생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었습니다. 저는 그때 분명히 보았습니다. 중국의 신학생들은 눈동자가 살아 있어요. 빛이 납니다. 얼마나 뜨거운지 몰라요. 저는 중국 지하교회 지도자들도 만나본 적이 있어요. 그들의 신앙은 진실했습니다. 뜨겁게 살아있었습니다. 복음은 어디에서나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이끕니다. 복음은 어디에서나 많은 사람을 영벌의 길에서 영생의 길로 이끕니다. 우리가 복음의 빚진 자로서 오늘 우리가 우리 교회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복음의 빚진 자로서 우리가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복음의 빚진 자로서 빚을 갚아야 합니다.
복음의 빚진 자로서 복음의 빚을 갚고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려면 세 가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 세 가지를 우리 기억합시다. 첫째는 믿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믿음이 대충대충이면 안 됩니다. 분명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복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신앙고백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에게 착한 행실이 있어야 합니다. 너의 착한 행실을 보여줘라. 너의 착한 행실을 보고 안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 믿고 하나님 백성 되게 하라.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복음의 빚진 자로서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돼요. 믿음이 분명해야 하고 복음이 분명해야 하며 착한 행실이 분명하게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더 진실한 믿음으로 살고 더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살고 우리의 삶에 착한 행실이 있어서 복음의 빚진 자로서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할 수 있어서 우리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날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어요.
고린도전서 12장 3절입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복음 전하여 영혼 구원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지 아니하시면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할 수 없어요.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성령님이 이미 나에게 오셨다는 뜻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내주하신다는 증거예요. 성령님이 나에게 역사하셨기 때문에, 성령님이 나를 감싸 주셨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를 수 있는 거예요. 전도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고 사실은 성령님이 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성령님이 쓰시기에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분명한 복음을 붙잡고, 착한 행실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혹 부족할지라도, 나에게 착한 행실이 좀 없어도 복음만은 전해야 합니다. 전도는 성령님이 하시는 거예요. 영혼 구원의 열매는 사람이 말을 잘해서 되는 게 아니고 복음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영혼 구원의 역사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루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미루고 미루다 보면 기회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후회하게 됩니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주위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기도하고, 눈물 흘리며 다가가 복음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영벌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영생의 길로 이끌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어릴 때 마음이 참 여린 아이였어요. 마음이 착하고 여리고 마음이 따뜻하고,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까? 어머니와 아버지가 심부름을 시켜요. 옆집에 뭘 갖다 주고 오너라. “예, 어머니!” 얼른 심부름해요. 너 옆집에 가서 뭐 빌려 오너라. 그건 제가 못 했어요. 마음이 그렇게 여렸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뭐 이렇게 누가 부탁하면 거절할 줄 모르는 착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가 결혼할 때가 돼어 결혼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한 사람이 나타났어요. 그래서 제가 찾아가서 부탁했습니다. “나하고 결혼해 주세요.” 부탁했어요. 그러니까 거절할 줄 모르더라고요. 그 사람도 거절할 줄 몰라서 “그러면 결혼하죠.” 그렇게 결혼해서 지금 잘 살고 있잖아요. 우리가 때로는 마음이 약해서 누가 뭘 부탁하면 거절을 잘 못하잖아요.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거절하지 말아야 될 주님의 부탁은 날마다 거절하며 살고 있는 겁니다. 사실 예수님은 십자가에 피 묻은 손으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두 손을 꼭 잡고 부탁하세요. “너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어다오. 너는 모든 민족을 제자 삼아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 주면 좋겠다. 그리하면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리고 오늘 또 놀라운 약속도 주세요. “그리하면 너는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게 해 주마.” 이 약속도 주세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성도가 되고 우리 다산은혜교회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행여 자신의 탐욕이나 이기심 때문에 복음의 길을 가로막는 사람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욕심 내려놓지 못해 전도의 문을 가로막는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을 영생의 길로 이끌고 인도해서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