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나훔 3:14~19)
BC 760년경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니느웨로 보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기를 거부했습니다. 다시스로 도망갔죠. 그렇지만 하나님은 기어이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십니다. 큰 풍랑을 일으키시고, 바다에 던지시고, 물고기 뱃속에 집어넣으셨다가 육지에 토하게 하심으로 기어이 요나를 니느웨이로 보내십니다. 요나는 못마땅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억지로 명령하시니까 니느웨로 가서 외쳤습니다. 40일 후에 니느웨는 폭삭 망할 것이다. 정말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요나는 니느웨 도성을 걸어 다니면서 40일 후에 니느웨는 망한다고,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하고 다녔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금식하고 하나님께 울부짖기 시작하는 거예요. 왕과 백성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향한 진노를 거두어들이셨습니다. 그때는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세월이 좀 흘렀습니다. 120년 넘는 세월이 흘렀어요. BC 640년경에 하나님께서 나훔 선지자를 통해서 니느웨에 관해 말씀을 다시 주시는데 나훔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은 다른 말씀이었어요.
요나 선지자를 통해서는 니느웨라도 여전히 하나님은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주셨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나훔서의 나훔 선지자를 통해서는 하나님이 무섭게 진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니느웨를 반드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이 선포됩니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고 나훔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걸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공의에 기초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에 기대어 위로를 받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습니다. 그러나 우리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만 알면 안 되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도 분명히 알고 믿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일에 우리는 더 열심을 내어야 할 것입니다.
BC 760년경에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로부터 120년 정도 세월이 흘러 나훔 선지자가 니느웨에 관한 말씀을 전하는데요, 말씀의 강조점이 달라요. 우리 확인해 보겠습니다.
요나 4장 2절 말씀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요나 선지자는 결론을 이렇게 내려요. 하나님은 인애가 크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셔서 결국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요나서는 그렇게 말씀합니다. 요나서는 니느웨 백성들까지라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나훔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은 다른 말씀이에요.
오늘 말씀 나훔 1장 3절을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하나님은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신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는데, 나훔서는 벌 받을 자를 기어이 심판하신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 하나님의 공의를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도 준비하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준비를 더 철저히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래 참으십니다. 기다려 주십니다. 그러나 끝내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없으면 하나님은 심판하시는데 더 무섭게 심판하십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는 분이 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사람일까요? 잘 믿는 척합니다. 믿음이 좋은 척해요. 하나님 믿는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그런데 실상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못한 삶을 살아요. 하나님을 잘 믿는 척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나가서는 더 죄짓고, 더 악하고, 거짓말도 잘하고, 믿음 없는 사람들보다 더 못한 삶을 살아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은 심판을 받을 때 더 무서운 심판을 받습니다. 말로는 회개한대요. 잘못을 깨닫고 이제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말로는 회개했다고 하는데 실상은 바뀐 게 하나도 없어요. 숨어서 더 나쁜 죄를 더 많이 지어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인데 사람들은 심판을 받을 때 더 무서운 심판을 받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더 열심을 내야 해요.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은 성결하고 정결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더 열심을 내야 해요. 축복만 계속해서 더 부르짖어서는 우리 한국 교회에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나훔서 말씀으로 들어갑니다. 나훔 선지자는 BC 640년경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나훔 선지자는 앗수르제국 니느웨가 반드시 멸망한다. 니느웨는 심판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나훔 선지자의 이름의 뜻은 위로라는 뜻입니다. 나훔 선지자는 앗수르제국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하고 선포함으로써 유다 백성들에게 위로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지도를 보시면 나훔 선지자는 니느웨성의 멸망을 선포했습니다. 나훔서를 해석하려면 니느웨에 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니느웨는 티그리스강 상류에 있었던 신앗수르제국의 수도입니다. 니느웨는 현재 이라크 북부 모술 지역에 해당하는데, 이슬람 국가 IS와 계속해서 지금도 교전하고 있고 늘 긴장감이 감도는 지역입니다. 과거에는 아주 대단하고 그 당시로는 세계 최대의 도성이었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어요. 그러나 저곳에 과거 니느웨 성에 영화는 대단했습니다. 당시에는 세계 최대의 국가였어요.
영국의 고고학자 오스틴 헬리 레이어드가 발굴된 유적자료를 종합해서 그린 그림입니다. 아마도 가장 강성했던 시기, 나훔 선지자가 앗수르제국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했던 그 당시 니느웨의 모습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BC 700년경에 저런 도성이 있었을까요? 유물로 추적해 보니 BC 700년경 나훔 선지자가 니느웨는 망한다고 외쳤을 때 그때 니느웨의 모습이 저런 모습이었대요. 대단하죠? 성벽 높이가 30미터로 성벽 위에 마차나 전차가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견고한 도성이었다고 합니다.
걸어서 니느웨 도성을 한 바퀴 도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3일 길이에요. 요나서에 기록돼 있어요. 저 니느웨 성을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 3일 길이라니 대단하죠? 누가 보더라도 니느웨 성은 무너지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어요. 니느웨는 무너진다. 니느웨는 심판을 받는다.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무너집니다. 니느웨는 무너집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공의의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훔 선지자는 그렇게 외치고 다녔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그 당시 니느웨 도성은 세계 최고 도성이었고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만 12만여 명이 살고 있었어요. 수십만 명이 사는 거대한 도성이었지만 니-느-웨는 무너진다. 나훔 선지자가 외쳤는데 그대로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니느웨 도성은 왜 무너졌을까요? 나훔 3장 1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니느웨 성을 한마디로 요약했습니다. 무슨 성이라고요? 피의 성이다. 사람들 죽이기를 쉽게 생각합니다.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포악한 사람들, 그 니느웨의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께서 두고 보시다가 기어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진을 보십시오. 지금 부조 작품으로 남아 있는 유물인데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왼쪽에 전차를 끌고 가는 사람이 마차 줄을 잡고 있죠? 그리고 투구 쓴 모습이 보이나요? 이 투구 쓴 사람이 아슈르 바니팔이라는 사람인데 BC 640년경 나훔 선지자가 니느웨가 망한다는 말씀을 선포할 그때 가장 위세를 떨치던 왕이에요. 저 아슈르 바니팔 왕이 사자를 죽이고 있어요. 사자는 당시의 열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저게 니느웨 성의 모습이에요. 강한 것이 미덕이고 힘센 것이 미덕이고 약한 사람은 죽어도 되고 힘없는 사람은 넘어져도 괜찮고 강한 자가 살아남고 힘없는 사람은 죽어도 되는 곳 그게 니느웨 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을 계속 지켜보시는 거예요. 그러다가 마침내 심판하셨습니다. 오른쪽 아랫부분을 보시면 짐승들이 보이고 사람들도 보이죠? BC 722년 앗수르제국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사마리아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가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좀 밝은 부분은 앗수르제국 니느웨 병사들이 사람 가죽을 벗기는 모습이래요. 그렇게 잔인하고 포악했어요. 그게 역사에 지금 남아 있어요. 유물을 발굴해 보니 니느웨 사람들은 그렇게 잔혹하고 사람 죽이고 피 흘리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아주 포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나훔 선지자는 말합니다.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하나님께서 두고 보시는 거예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시니까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나훔 3장 2절과 3절 같이 읽습니다.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휙휙 하는 채찍 소리에 사람이 죽어 나가요. 쓰러져요. 번쩍이는 칼에 사람들이 피 흘리며 죽어요. 이 앗수르제국 니느웨 사람들이 주변 나라를 침략해서 공격할 때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휙휙 하는 채찍 소리에 사람들이 쓰러져요. 번쩍이는 칼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요. 니느웨 사람들이 주변 나라를 그렇게 공격하고 주변 나라 사람들의 피 위에 자기네들의 도성 니느웨를 세웠는데 하나님이 다 보고 계셨어요.
주변 나라 사람들을 그렇게 죽이고 다른 사람들의 금과 은을 빼앗아서 자기네들은 화려한 니느웨 성을 세웠는데 하나님께서 보고 계셨어요. 요나 선지자 때는 그래도 긍휼을 베풀어 주셨지만 나훔 선지자 때는 말씀하시는 거예요.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없구나. 더는 기다릴 수 없다. 니느웨는 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는데 니느웨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민족에게 행한 그대로 당한 것입니다. 이제 니느웨 성 안에서 휙휙 하는 채찍 소리에 니느웨 사람들이 쓰러져요. 번쩍이는 칼날에 자기네들이 죽는 거예요. 자기가 행한 대로 당한다는 말씀이에요. 개인이나 나라나 민족이나 똑같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이치입니다. 자기가 주변 나라 사람들을 그렇게 괴롭히고 죽였는데 자기도 그렇게 심판받고 망한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대 앗수르제국의 역사는 BC 2500년경부터 시작됐는데, 앗수르제국이 맹위를 떨치던 시대는 BC 900년경부터입니다. 그 시절 니느웨 사람들은 메뚜기 떼처럼 다니면서 주변 나라 사람들을 집어삼켰어요. 펄벅 여사의 “대지”에 보면 메뚜기 떼가 지나가면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농부들이 신음하고 울부짖어요. 이 니느웨 백성들이 그랬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자기네들이 똑같이 그렇게 당합니다. 바벨론제국과 메대제국의 연합군이 니느웨 성을 공격할 때 자기네들도 똑같이 그렇게 당했다는 것입니다. BC 760년경 요나 선지자가 억지로 니느웨로 와서 마지못해 외쳤어요. 40일 후에 니느웨가 망한다. 그때 정신 차리고 회개했잖아요.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그들은 가장 포악한 백성으로 돌아가고 말았어요. 회개는 진정성이 생명입니다. 진실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에겐 그것이 약했어요. 얼마 못 갔어요. 그래서 금방 다시 포악한 사람들이 되는 거죠.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나훔 1장 8절을 우리 같이 읽습니다.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BC 640년경 나훔 선지자가 말했습니다. 그 말은 물로 니느웨는 심판을 받는다. 실제로 티그리스 강물이 흘러넘쳐서 거대한 도성 니느웨를 덮어버렸어요. 니느웨 도성이 거대한 티그리스 강의 범람으로 성문이 열리고 성벽이 무너질 지는 그때 바벨론제국과 메대의 연합 군사들이 들어가서 니느웨 성을 공격하고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이고, 그렇게 니느웨 성은 심판받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BC 612년 니느웨는 심판을 받고 멸망했습니다. 바벨론 제국과 메대제국 연합군에 BC 612년 이 니느웨 도성은 멸망해요. 그리고 이어서 BC 609년 앗수르제국은 완전히 망합니다. 나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예언하시고 선포하신 그대로 되었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진실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실은 모두 진실입니다. 역사 속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대로 이루어졌고 이후로도 이루어집니다. 나라나 개인이나 하나님 말씀 성경 말씀을 믿고 성경 말씀에서 길을 찾고 답을 찾는 사람은 복을 받지만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개인이나 나라나 민족은 다 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오늘도 역사 공부를 조금 하고 지나가십시다. 이 나훔서 같은 소선지서를 읽고 해석하려면 구약의 역사를 좀 공부하고 정리해 두시면 성경을 잃고 해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메모하고 정리해 보십시다.
BC 760년경 요나 선지자가 마지못해 하나님께서 가게 하셔서 억지로 니느웨로 가서 외쳤는데 그때 니느웨는 회개했어요. 그래서 심판을 면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회개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다시 잔인하고 다시 포악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죠.
BC 722년 북 이스라엘을 집어삼킵니다. 북 이스라엘 사마리아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셨어요.
BC 663년에는 이 앗수르제국이 애굽도 공격합니다. 애굽의 노아문, 테베, 룩소르라는 곳을 정복해요. 계속해서 주변 나라를 괴롭히고 공격하는 그 시절만 해도 앗수르제국은 위세가 대단했기 때문에 영원할 줄 알았을 거예요.
BC 609년에는 앗수르제국 전체가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긴 세월 동안 묻혀 있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나훔서 이야기와 요나서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 흔적이 없으니 성경이 진실이 아닌 거 아니야? 그런 주장도 있었어요. 1800년대에 이르러 성경의 기록이 진실한가 찾아보자. 그래서 이라크 땅에 가서 발굴 작업을 펼치기 시작하는데 성경 요나서와 나훔서에 기록된 니느웨 도성의 유물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유물이 나왔어요.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가면 앗수르관이라고 따로 구분돼 있는데, 발굴한 유물이 거기에 다 있습니다. 거기에 도성이 얼마나 대단한 도성이었는지 알 수 있어요. 그러나 흙먼지 속에 엄청 긴 세월 동안 묻혀 있었어요. 묻혀 있다가 이제 드러난 거죠. 성경은 이렇게 실제 역사를 기록하고 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읽을 때 진실한 마음으로 읽고 또한 두려운 마음으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을 때 그냥 복 받으라는 말씀만 자꾸 찾고, 거기 밑줄 치고, 별표 세 개 하고 그러지 말고, 회개하라 정신을 차려라. 너의 소위를 돌아볼지어다. 하나님 앞에 너의 마음을 정결케 할지어다.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때 여러분 “아멘” 하고 그런 말씀에 밑줄 긋고 별표 5개 표시하고, 그런 마음의 태도로 성경을 읽어서 여러분 정말 복 있는 성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니느웨의 심판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많은데, 우리 피부에 와 닿는 교훈 하나 마지막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나훔서의 마지막 절은 참 묘하게 끝납니다. 나훔 3장 19절입니다.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
마침내 니느웨가 무너졌어요. 안 무너질 것 같았는데 니느웨 도성이 심판을 받았어요. 그랬을 때 주변 나라 사람들이 니느웨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손뼉을 쳤어요. 나훔서 마지막은 ‘그거 참 잘됐다’로 끝이 난다는 거예요. 묘하죠? 아니 니느웨 도성이 망하고 니느웨 사람들이 벌 받아서 얼마나 많이 비참하게 죽었나요? 그런데 사람들이 박수를 쳐요. ‘그거 참 잘됐다. 듣던 중 좋은 소리다. 고소하다. 사람들이 그렇게 했답니다. 그리고 이 나훔서가 끝이 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자신도 이 말씀으로 한번 돌아보고 살펴보십시다. 내가 일이 잘못됐어. 망했어. 내가 사업도 망하고 직장에서도 일이 잘못돼서 직장에서도 뭐 이렇게 강제로 퇴직당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어.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그거 참 잘됐네” 하고 손뼉을 치면 어떻게 되겠어요? 내가 병에 걸렸다고 칩시다. 사람들이 “아 그 사람 벌 받았네. 잘 됐네” 하며 손뼉을 치면 어떻게 돼요? 내가 길 가다 넘어졌는데 사람들이 “잘됐다” 하며 손뼉 치면 어떻게 돼요? 니느웨가 멸망했는데 그 소식을 듣는 주변 나라 사람들이 손뼉을 쳤대요. 니느웨가 잘못 살았다는 증거죠.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만일 제가 여기 교회 앞에서 길 가다가 넘어지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래요? 제가 제일 먼저 달려가겠습니다. 손들어 보세요. 기억하겠습니다. 제가 넘어졌는데 제일 먼저 달려와서 제 손을 잡아 일으켜 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저는 잘 산 거죠. 성도 여러분도 잘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믿어야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믿어야 돼요.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합니다. 동시에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겁니다. “너의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우리가 믿는다며 “주여, 주여!” 하는 그런 신앙만 가지고는 안 돼요. 정말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믿음이 있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워야 하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이 볼 때도 아름다운 삶이어야 될 줄 믿습니다.
현대인들은 시간의 의미를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시간이란 누릴 수 있는 기회다. 즐길 수 있는 기회다. 무언가를 소유할 수 있는 기회다. 그렇게 생각하는 현대인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더 사랑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셨어요. 십자가 지시고 인류의 죗짐을 대신 짊어지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성경에 기록합니다. 우리 주님께 시간은 더 사랑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여러분 바라기는 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100세까지 사는 건 좋은데 잘 살아야 합니다. 내가 넘어졌는데 “그거 참 잘됐다” 하는 소리 듣는 그런 사람으로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됐을 때 사람들이 손뼉 쳐주고, 내가 넘어졌을 때 사람들이 와서 손 잡아주고 우리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당신도 예수님 믿고 하나님 백성이 되고, 함께 천국 백성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전도했을 때 전도가 열매를 맺을 수 있잖아요.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한 믿음,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볼 때도 아름다운 믿음, 우리 꼭 그렇게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