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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학개 2:1~9)

  • 박재역
  • 2024.04.29 오전 05:07

BC 1020년 다윗이 골리앗과 맞서서 싸웁니다. 다윗이 한손에 막대기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물매를 들고 주머니에는 매끄러운 돌 5개를 넣고 골리앗과 싸워서 이기고 나라를 구합니다. 그런데 그때 다윗이 들고 나간 무기는 사실은 막대기가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물매도 아니었습니다. 믿음이었습니다. “어찌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느냐?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에게 나아가노라.” 믿음으로 나가서 싸워 이겼습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다윗의 나이가 스무 살입니다.

BC 1010년에 다윗이 유다지파의 왕이 됩니다. BC 1004년에는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나라 전체의 왕이 됩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 법궤를 모시고 옵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법궤를 모셔 옵니다. 너무 기뻐서 바지춤이 내려가는 것도 모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때 다윗의 아내 미갈이 업신여기는 말을 할 때 다윗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나는 이보다 더 낮아질 수도 있다. 이보다 더 스스로 천하게 보일 수도 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며 뛰어놀며 찬양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비하면 이것도 부족하다.”

다윗은 그렇게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마음속에 복 받을 생각을 품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군가에게 복을 주실 때 먼저 생각의 복을 주셔요. 복 받을 생각을 하게 하십니다. 다윗은 편안할 때 복 받을 생각을 했습니다. 편안할 때 하나님을 생각했어요. 삶이 어렵고 고달플 때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쉽습니다. 그러나 삶이 편안할 때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그런데 다윗은 대적을 파하고 왕궁에 편안히 있을 때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집을 지어 드려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백향목으로 지은 궁궐에 편안히 사는데 여호와 하나님의 법궤는 휘장 가운데 길바닥 위에 있도다. 내가 하나님의 집을 지어 드려야지.’ 그렇게 복 받을 생각을 했습니다.

다윗은 참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만 한 사람 찾기가 참 힘들지요. 이런 사람이 만일 저에게 와서 무엇을 부탁한다면 저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렇게 믿음의 사람,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사람,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나에게 와서 무슨 부탁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다 들어줄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든지 다 소원대로 그대로 이루어 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의 소원을 거절하셨어요. “안 된다. 다윗 너의 손으로는 안 된다. 너는 전쟁을 너무 많이 하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사람들을 너무 많이 죽였어. 피 흘린 너의 손으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역대상 22장에 보면 다윗의 손으로는 안 되는 이유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으로서는 매우 억울한 일이기도 합니다. 다윗이 전쟁에 나선 것이 개인의 탐욕이나 욕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전쟁에 나선 것이 나라를 살리려고 한 것이고, 이방 나라의 우상의 제단을 허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인데 나 개인의 탐욕이나 욕심 때문에 전쟁에 나서서 내가 사람들을 죽이고 피 흘렸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내 손으로 성전 건축을 못 한다면, 하나님, 그것은 이해하겠는데 억울합니다.’ 하나님께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윗처럼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뜨거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거절하셨어요. “너의 손으로는 안 된다.” 거절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거절감으로 상처를 받을 때 그 상처가 가장 크고 깊으며 오래갑니다. 나의 사랑이 거절당할 때, 내 생각 내 의견 내 주장이 거부당할 때,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받아요. 거절감의 상처는 가장 깊은 상처가 됩니다. 내가 사랑받지 못하고 있구나. 내가 인정받지 못하고 있구나. 온 세상에 나만 홀로 남았구나. 외로움과 고독, 거기서 우울증이 오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되는 자폐증상이 오며, 나중에 더 심해지면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죽어버리자그런 자살 충동까지도 느끼게 돼요. 거절감의 상처는 이렇게 깊은 상처입니다.

그런데 거절감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해결해 내느냐를 보면 사람의 인격과 사람에서 사람됨과 그 사람의 신앙 성숙도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거절당했습니다. 다윗의 선한 마음이 거절당했어요. 하나님께서 다윗의 선한 마음을 거부하시고 거절하셨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다윗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거절감의 상처를 어떻게 풀어냈을까요?

 

역대상 2214절입니다.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다윗은 금을 10만 달란트를 준비하고 은을 100만 달란트 준비했습니다. 여기 다윗의 위대함이 있어요. 금이 생기고 은이 생기고 은이 생기면 이거 하나님의 집 짓는 데 사용해야지그렇게 준비했습니다. 내 손으로 하나님의 집을 못 지어도 내 아들의 손으로 하느님의 집을 지어 드려야지. 다윗은 상황을 그렇게 해석하고 상황을 그렇게 받아들였어요. 오히려 더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의 집 짓는 일을 준비할 수 있다고 상황을 해석했어요. 내가 거부당했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엄청나게 준비합니다.

10만 달란트 은 100만 달란트의 가치가 어느 정도 되나 하면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이상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어요. 하나님이 내 마음의 소원을 거절하셔서 나도 이제 하나님과 인연을 끊으렵니다. 그런 사람 있어요. 목회하다 보면 한 1,000명 중에 한 명은 있더라고요. ‘하나님,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는데, 내가 얼마나 많이 기도하고 충성 봉사했는데 나의 이 소원을 안 들어주십니까? 하나님과 나 이제 인연 끊으렵니다.’ 그런 사람이 있더라고요.

다윗을 보세요. 하나님께 내가 섬길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벌었다. 성전 건축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얻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요. 금과 은을 준비하고 녹과 철을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이 준비합니다. 백향목 재목을 준비하고, 대리석을 무수히 준비해요. 좋은 대리석이 생기면 이거 하나님 집 짓는 데 사용해야지그렇게 다 모으고 준비하는 거예요. 그렇게 다윗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도리어 거절감을 더 성장하는 기회로, 하나님을 더 섬길 수 있는 기회로 삼았어요.

 

역대상 2215절과 16절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또 장인이 네게 많이 있나니 곧 석수와 목수와 온갖 일에 익숙한 모든 사람이니라 금과 은과 놋과 철이 무수하니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하니라.”

다윗이 금과 은만 준비한 게 아니고, 녹과 철과 재목과 대리석만 준비한 게 아니고, 다윗은 사람을 준비했습니다. 석수와 목수와 장인을 준비했어요. 실로 대단합니다. ‘내 손으로 성전을 못 지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내 아들의 손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해야지.’ 그렇게 해석하고 상황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데 최선을 다해요.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신앙이고 다윗의 인격이며 다윗의 사람됨입니다.

한 달 전에 우리 교회 집사님 한 분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우리 교회 등록하시고 같이 신앙생활을 하신 지 한 1년 정도 되신 집사님이신데,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우리 다산은혜교회에 와서 제가 은혜받고 믿음생활하고 참 감사해서 하나님께 뭘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 1층 현관에 큰 수족관을 하나 제가 헌물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부탁했어요. 마음이 얼마나 귀합니까? 돈이 적게 드는 것도 아닐 텐데 우리 교회 1층 현관에 큰 수족관을 갖다 놓고 교회 올 때마다 성도들이 큰 수족관에서 큰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노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평화롭고 아이들은 또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우리 집사님이 저에게 찾아오셔서 그렇게 그걸 헌물하시겠대요. 이미 견적도 다 받아봤대요.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거절했습니다. “그거 관리하기 힘들어요. 안돼요.” 그 집사님은 얼마나 많이 준비하고 신경 쓰고 생각했을까요? 저는 너무 쉬운 말로 거절했어요. “안 됩니다. 그거 관리하기 힘들어서 안 돼요. 그리고 그 자리는 절기 때마다 필요한 다른 시설물을 거기에 설치해야 하니까 그 자리는 안 됩니다.” 제가 거절했어요. 집사님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거예요. 그 선한 마음을 제가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했으니까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래도 얼굴이 밝으시더라고요.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집사님의 선한 마음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제가 기도하고, 목회하는 중에 집사님이 섬기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가치 있게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우리 교회에 꼭 이것이 필요하다하는 것이 생기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얼굴이 환해지시더라고요. 제가 거절했잖아요. 정성껏 준비했는데 제가 너무 쉽게 거절했잖아요. 상처가 되었을 텐데도 그 집사님의 얼굴이 밝고 환하게 빛이 나더라고요. 저도 기뻤어요. 제가 생각했습니다. ‘역시 다산은혜교회 성도는 다르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거절감의 상처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사람됨과 인격과 신앙의 수준을 알 수 있어요. 다윗처럼 거절당했어도 오히려 더욱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지금도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거절당했을 때 거절감의 상처를 여러분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까?

BC 970년 다윗이 성전 건축 준비를 다 해 놓고 죽습니다.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합니다. BC 966년에 성전 건축을 시작해서 BC 959년에 솔로몬 성전이 완공됩니다. 이 솔로몬 성전을 제1성전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준비하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 1성전입니다. 그런데 이 제1성전이 무너져요. 언제 무너졌습니까? BC 586년에 바벨론제국의 침입으로 유다 나라가 망할 때 예루살렘 성전도 불타고 무너지고 훼파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말씀 학개서 말씀은 제2성전을 건축하라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에 다시 성전을 건축하라는 말씀입니다.

 

학개 11절을 찾아 주십시오.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학개 11절 다리오 왕 제2년은 BC 520년입니다. 그리고 BC 537년에 바벨론 포로에서 1차로 귀환합니다. BC 536년 제2성전 건축을 시작합니다. 에스라 38절을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BC 520년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가 성전 건축을 독려합니다. 왜냐하면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가 반대에 부딪치고 열악한 조건으로 성전 건축이 무려 16년 동안이나 중단돼요. 그래서 BC 520년에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가 중단된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래서 BC 516년에 제2성전, 즉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됩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70년 만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70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냐 하는 정의는 서로 해석에서 조금 차이가 나긴 하지만 대체로 BC 586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는데 BC 516년에 성전이 재건되었으므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70년 만에(586-516=70) 이루어졌다고 이해합니다.

역사 이야기 조금 더 말씀드립니다. BC 586년에 유다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BC 538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바사의 고레스 왕이 고레스 칙령을 발표해서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내용의 칙령을 발표하죠. 그래서 BC 5371차로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유다 백성들의 일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요. 그렇지만 곧바로 성전 건축은 시작하지 못합니다. 형편이 너무 어렵고 힘들었어요.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특별히 사마리아 사람들이 아주 극심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성전 건축이 중단됐는데 16년간이나 성전 건축이 중단됐어요.

BC 520년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되게 하신 것입니다. BC 520년 학개 선지자가 일어나서 다시 성전을 건축할 것을 책망도 하고 권면도 한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고 배우는 학개서 말씀입니다. 학개서는 BC 520년에 기록된 말씀으로 학개 선지자는 스가랴 선지자와 동시대 인물입니다. 학개라는 이름의 뜻은 절기, 축제입니다. 학개 선지자는 축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어요. 무엇이 진짜 축제하는 삶인지, 무엇이 정말 기쁘게 살아가고 행복하게 사는 삶인지, 축제의 삶이란 무엇인지 그걸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이 학개 선지자는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온 유다 백성들에게 축제의 삶을 가르쳤고 그들의 삶을 축제의 삶으로 이끌어낸 선지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학개 12절 말씀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학개 선지자 시대까지만 해도 많은 유대인이 예루살렘에 돌아왔으나 성전 건축은 손을 놓고 있었어요. 건축을 시작한 지가 16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한다는 말이 아직 때가 아니다.” 그렇게만 말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16년 동안 뭐 하고 살았을까요?

 

학개 14절입니다. 우리 같이 읽읍시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성전 건축을 중단하고 자기들은 뭐 했을까요? 판벽한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학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어떻게 바벨론 땅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지를 다시 생각해라. 너희들이 바벨론 땅에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수금을 걸어놓고 예루살렘을 기억하며 눈물 흘리던 시절을 기억해라. 너희들이 어떻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있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고 여기에 너희들이 돌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목적이 무엇인지도 다시 생각해라. 16년 동안이나 성전 건축은 중단하고 너희들은 판벽한 집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먼저 책망하셨어요.

하나님은 기다려 주셨습니다.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유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자기 집을 짓고 자기 삶의 터전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려 주셨어요. 문제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그 사람들의 마음이 변질된 거예요. 우선순위가 잘못된 거예요. 먼저 내가 살 집부터 짓고, 내가 먹고 살 일을 먼저 준비해 놓고, 그다음에 기회 되면 하나님의 일도 하자. 이렇게 우선순위가 뒤바뀌어 버린 거예요. 먼저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채워주실 텐데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먼저 내가 먹고살고 난 다음에 하나님을 찾아보자. 하나님을 생각해 보자. 그렇게 우선순위가 바뀌어 버린 거예요. 그것을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 책망하셨어요. 우선순위가 잘못되면 어떻게 될까요?

 

학개 16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많이 뿌려도 수확이 적어요. 많이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마셔도 흡족하지 못하고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살아도 행복을 몰라요. 우선순위가 잘못되면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모든 것이 헛수고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잘못되면 영적인 질서가 흐트러져요. 삶의 질서도 뒤죽박죽이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가 무엇을 하든지 진실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고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할 줄 아는 영적 우선순위가 바르게 세워진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은 질서정연한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학개 11절을 다시 보시고 다리오 왕 제2년 여섯째 달 곧 그달 초하루에거기 다리오 왕 앞에 여러분의 성경책에 바사 사람 다리오 왕이라고 적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여기 학개서 11절에 나오는 다리오는 바사 왕 다리오입니다. BC 521년에 등극해서 BC 486년까지 다스린 바사제국의 왕을 가리킵니다.

이제 바사 제국의 통치자들을 소개합니다. 고레스(키루스 2, BC 539~530)입니다. 이 고레스 왕이 바사(페르시아) 제국을 일으킨 왕입니다. 고레스 왕이 칙령을 발표해서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 돌아가도록 허락한 왕입니다. 고래서 고레스 왕의 외삼촌이 메대 사람 다리오인데 고레스 왕이 자기 외삼촌이며 장인이기도 한 메대 사람 다리오와 힘을 합쳐 바벨론제국을 정복합니다. 그러고는 그 당시 이미 62세인 자기 외삼촌 다리오에게 나라를 맡기고 자기는 계속 외부로 정복 전쟁을 다녔습니다.

그래서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통치할 때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집니다. 메대와 바사에 변치 않는 규례를 걸어서 다니엘을 모함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5장과 6장에 나오는 다리오는 메대 사람 다리오입니다. 오늘 학개 11절에 나오는 다리오는 바사 왕 다리오입니다.

바사 제국의 통치자 중 고레스 다음은 캄비세스 2(BC 529-522)로 고레스 대왕의 아들인데, 성격이 아주 잔혹하고 난폭해서 재위 7년 만에 죽고 말았어요. 그리고 그 다음 왕이 학개 11절에 나오는 다리오(히스타페스)라고도 합니다. 학개, 스가랴 선지자 시대에 다스렸던 통치자입니다. 그리고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1) 왕이 유대인 에스더를 왕비로 맞이한 왕입니다. 그다음 아닥사스다 왕이 나오는데,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킨 인물입니다. 에스라가 2차로, 느헤미야가 3차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할 때의 통치자가 바로 아닥사스다 왕입니다.

바사제국(페르시아제국)은 오늘날의 어느 나라에 해당할까요? 이란입니다. BC 539년 바사 사람 고레스가 바벨론제국을 정복하고 지금의 이란, 즉 페르시아제국을 크게 일으키죠. 메대와 바사를 통합해서 바사제국(페르시아제국)을 일으킵니다.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벨론제국은 지금의 이라크에 해당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바사제국(페르시아제국)은 오늘날의 이란에 해당합니다. 이란 사람들에게 건국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성경에 나오는 고레스 왕이라고 말합니다. 고레스 왕이 BC 538년에 칙령을 내려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았습니까? 이란 건국의 아버지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이란과 이스라엘은 서로 공격하고 지금 전쟁의 위기 속에 있지 않습니까? 지금 이란 측에서 보면 중동 국가 중에서 이스라엘이 배신자로 보이는 거예요. 중동을 배신한 배신자, 미국과 손잡은 배신자로 이스라엘이 보이지요. 그래서 계속 갈등 관계에 있습니다. 지구촌에 자꾸만 전쟁이 많아져서 걱정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가 되면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재난이 있을 것이고 하셨는데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더 깨어 근신하여 기도하고, 나 자신만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우리나라만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지구촌의 평화와 안정과 지구촌 복음화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학개 24절입니다. 같이 읽읍시다.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BC 537년에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던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죠. 그때 유다 백성들을 앞장서서 이끌었던 지도자가 스룹바벨이라는 사람이에요. 스룹바벨은 다윗 왕의 후손인데 고레스 왕이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한 사람입니다. 이 스룹바벨이 1차로 유다 사람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죠. 그래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합니다. 이 스룹바벨이 건축한 성전을 제2성전,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1성전은 솔로몬 성전이고 제2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스룹바벨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을 인수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데 여건이 너무 열악해요. 가진 것도 없고, 힘도 부족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아주 극렬하게 반대하고, 시기하고, 결국 성전 건축이 16년이나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다시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스룹바벨을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이 있었어요. 여건이 힘들고, 형편이 어려우며, 성전 건축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것도 힘들었지만 스룹바벨을 정말 힘들게 한 것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이전 성전인 솔로몬 성전의 영광에 비하면 너무나 작고 초라한 성전을 지울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노력해도 안 될 때 얼마나 큰 절망이 밀려올까요. 스룹바벨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다윗 왕이 준비하고 솔로몬 왕이 건축한 제1성전에 비하면 자신은 너무나 작고 초라한 성전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 스룹바벨의 가슴속 큰 문제였어요.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의 마음을 아시고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위로하신 말씀이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입니다. 스룹바벨아 강해져라. 그리고 용기를 가져라. 내가 너의 형편을 안다. 내가 너의 마음을 알아. 네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예전 솔로몬 성전만큼 건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다 알아. 내가 알고 있어. 그러니 너 다시 강해져라. 다시 용기를 내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너의 형편을 내가 다 알고 있다. 너의 부족한 것은 내가 채워주마. 네가 부족한 것만큼 내가 나의 영광을 더하여 주리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스룹바벨과 대제사장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학개 23절을 보십시오.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어요. 아무리 지금 최선을 다해서 성전을 건축해도 솔로몬 성전만큼 건축할 수 없다는 걸 다 알고 계셨어요. 그들이 그것 때문에 마음 아파 하는 것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그들을 위로하시는 말씀입니다.

 

학개 28절과 9절 같이 읽으십시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오, 금도 내 것이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너무나 작고 초라하다 하여 용기를 잃지 말라. 성전 건축에 바칠 물질이 없다하여 용기를 잃지 말라. 은도 내 것이오, 금도 내 것이다. 부족한 것은 내가 채워주마. 부족한 것만큼 내가 나의 영광으로 채워주마. 내가 너희에게 평강을 주리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클 것이다. 지금 너희가 건축하는 이 성전은 장차 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리는 마지막 성전이다. 그러니 이 성전의 영광이 솔로몬 성전의 영광보다 결코 작지 아니하다 그러니 너 다시 강해져라. 다시 힘을 내고 다시 용기를 내어라. 하나님은 그렇게 위로하셨어요.

좀 더 나아가 여러분, 지금 우리의 삶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처럼 모든 것이 부족해서 형편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마음은 있지만 교회가 새성전을 건축했는데 남편이 어려워 마음껏 건축헌금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그것이 마음이 아파 힘들어하는 성도들이 있는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위로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형편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은도 금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지키시고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형편을 다 아세요. 내가 마음은 있지만 교회를 위해서 큰 크게 한번 섬기지도, 헌신하지도 못하고 내가 이렇게 살아서 되겠나. 마음이 아픈 분들 오늘 말씀으로 위로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형편을 다 아셔요. 여러분 다시 강해지시기 바랍니다. 다시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부족한 것은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여러분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형편을 알아. 내가 너의 마음도 안다. 내가 너로 인해 얻는 기쁨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스스로 힘을 내고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으로 여러분 마음에 큰 위로가 되기를 예수님 믿음으로 축원합니다.

어제 우리 교회 나눔과 봉사 선교회에서 반찬 나눔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반찬을 만드는 팀이 있어요. 그리고 만들어 놓은 반찬을 배달하는 팀이 있거든요. 어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 가정에 반찬을 배달했는데, 할아버지가 이런 이야기를 했대요. “내가 혼자 살아보니 지금 내 인생의 75% 고민이 뭐냐 하면 무슨 반찬을 만들어서 밥을 먹나 하는 문제인데 다산은혜교회가 내 인생 고민의 75%를 해결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랬다는 거예요. 인생의 75% 고민을 해결해 주는 거래요. 도시락 반찬 통 하나가 그렇게 얼마나 가치 있고 얼마나 보람 있는 일입니까? 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축제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축제가 어디 있겠어요. 나의 사랑과 나의 섬김으로 누군가 인생의 고민 75%가 해결된다는데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어요?

여러분 우리 더 힘쓰고 애써서 축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더 힘쓰고 애써 용기를 내야 돼요. 나의 작은 섬김이 누군가 인생의 75% 고민을 해결한다는데 우리 그렇게 살아야 되잖아요. 우리 용기를 내야 되잖아요. 우리 더 힘껏 일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더 힘을 더하여서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축제의 삶을 우리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 믿음으로 축원합니다.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1
  •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학개 2:1~9)
  • 2024-04-29
  • 박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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