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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요한복음 1:19~28)

  • 박재역
  • 2024.12.16 오전 09:21

여러분 한번 웃어보시기 바랍니다. 웃을 일이 없지요? 세상을 바라보면 웃을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바라보면 웃을 수 있습니다. 정국이 불안하고, 시국이 어수선하며, 국격은 떨어지고, 안보도 경제도 걱정이며, 국민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어 세상을 바라보면 참 웃기가 어렵죠. 그러나 우리 주님 바라보면 살 길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길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길을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길을 이끄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깨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부르짖어 기도하면 다시금 이 민족이 평화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하신 그 말씀을 붙들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더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겠습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이 민족 가운데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속히 시국이 안정되고, 이 나라 모든 백성이 서로 존중하고 서로를 축복하며, 이 나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으로 나아가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으시면 여러분 우리 예배시간이지만 인사 한번 합시다. 옆 사람 쳐다보고 밝게 웃으며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 한번 합시다. 이렇게 웃는 여러분을 모습을 보니 제 마음도 좀 밝아지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이름이 요한이라는 사람이 여러 명 등장합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의 뜻은 참 좋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란 뜻이라 참 좋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사람, 그래서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누군지를 잘 모릅니다. 앞에 수식어를 넣어서 구분합니다. 대표적으로 누가 있을까요? 사도 요한과 세례 요한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람은 사도 요한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갈릴리에서 그물을 깊다가 형제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과 요한1, 2, 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늘 예수님 곁에 있었어요. 예수님께 특별히 사랑을 받았던 제자입니다. 이 제자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이제 요한복음 1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이 말씀의 요한은 누구일까요?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인데,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세례요한이라 해서 이렇게 구분해 부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이 세례 요한을 우리가 자세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절에 말씀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세례 요한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에요. 성경에는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히 보내심을 받은 사람 세례 요한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23절도 보십시오.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이 요한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미리 보낸 사람인데 뭐하라고 보냈을까요? ‘드디어 그리스도가 오셨다. 약속하신 메시야 그분이 드디어 오셨다.’ 이 사실을 먼저 선포하라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미리 보낸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이사야 403절 말씀을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놀라운 사실은 구약시대 이사야 선지자도 세례 요한을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BC 740년경에 유다 나라에서 활동한 선지자인데, 그 시절에 이미 이사야 선지자가 세례 요한이 이 세상에 온다는 것을 예언했어요.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먼저 와서 드디어 메시야가 오신다는 사실을 외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그렇게 예언한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말라기 45절도 같이 읽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라기 선지자도 세례 요한이 온다는 사실을 예언했어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선지자인데 BC 435년경에 사역했던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도 세례 요한이 온다는 사실을 예언했어요. 이제 곧 엘리야 선지자 같은 선지자가 나타난다. 엘리야 선지자 같은 사람이 먼저 와서 메시야가 오시는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말라기 선지자도 예언했습니다.

마태복음 1712절과 13절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예수님도 세례 요한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 확정 지어 주셨어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 사람,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그 사람, 즉 엘리야 선지자 같은 사람이 올 것이라고 한 그 사람이 세례 요한이라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어요. 그러므로 이 세례 요한은 정말 중요한 인물이죠.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고, 말라기 선지자도 예언했으며, 예수님께서도 과연 그렇다고 증언한 사람, 이 세례 요한은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이 세례 요한은 특별히 엘리야 선지자처럼 승인받은 사람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BC 875년부터 북이스라엘에서 주로 사역한 선지자인데, 구약시대의 엘리야 선지자와 신약시대의 문을 열어놓은 세례 요한 사이에는 약 900년이라는 시간상의 차이가 있어요. 그런데 닮은 점이 많아요. 엘리야 선지자도 요단강에서 사역하며 능력을 행사했고, 세례 요한도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었어요. 엘리아 선지자가 털옷을 입고 광야의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 살았는데, 세례 요한도 낙타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띠고 광야의 거친 음식을 먹고 살았어요. 엘리아가 고난과 핍박을 이겨내면서 사역을 감당했는데, 세례 요한도 무수히 많은 고난과 핍박을 감내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엘리야처럼 쓰임받은 사람이고, 구약시대 이사야 선지자와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처럼 세례요한은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111절을 같이 읽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제일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면 지금은 알지 못하는 삼위일체, 그 하나님의 신비를 알게 되겠죠. 하나님 앞에 가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가 다 새로워지고 분명해질 겁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세례 요한만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또 사람 중에는 대속의 사역 가운데 세례 요한만큼 크게 참여한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은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특별한 사람이죠.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고,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했으며, 예수님께서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 제일 큰 사람이라고 증언하신 세례 요한은 다. 제일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실제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인물입니다. 실제로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회계하라고 외칠 때, 물로 세례를 베풀 때 능력이 나타나고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어요. 사람들 중에는 세례 요한을 메시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인기절정이었어요. 세례 요한을 추종하는 제자들도 넘쳐났어요. 세례 요한은 인기가 대단한 사람이었고, 사람들이 저 세례 요한이 메시야인가 보다하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능력도 나타났어요.

그런데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유대인들에게 회개하라고 선포한 것 자체가 문제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는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선포했으니 그들의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지요. “감히 누구보고 회개하라는 거야? 우리는 선민이고 율법을 잘 지키고 할례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선민이요 택함 받은 족속인데, 감히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외치는 저 사람은 누구냐?” 이들 유대인은 특별히 율법을 지키면서 할례 받은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어요. 스스로 할례 받은 백성이다. 선민이다. 택함 받은 백성이다. 할례 받은 백성이라는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세례 요한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할례 받은 것으로 자랑하지 말고 세례를 받으라고 외쳤으니 이게 당시로서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조사단을 파견해요. 적대적인 감정으로 세례 요한을 곱게 볼 리가 없죠. ‘저 사람이 누군가 처단해야 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조사단을 파견했는데 예루살렘에 있는 산헤드린 공의회는 종교재판을 통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막강한 힘이 있었어요.

그런 무서운 사람들이 찾아와서 세례 요한에게 질문합니다. “너는 누구냐?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말하고, 우리는 다 할례 받은 사람인데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우리에게 세례를 받으라고 고함을 질렀느냐? 너는 누구냐?”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조사단이 찾아가서 세례 요한에게 그렇게 질문을 했어요. 심문을 한 겁니다. 그때 세례 요한이 자기소개를 세 가지로 요약해서 말했습니다. 오늘 그 말씀을 같이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20절 함께 읽습니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첫 번째 대답은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세례 요한을 추종하고 그를 메시야로 생각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어요. 그때 만일 세례 요한이 자기가 애매하게 메시야인 척했다면, 세례 요한은 사이비 교주가 됐을 거예요. 그런데 분명히 아니라고 말했어요. 이게 중요해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했어요. 세례 요한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선포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오신 분이시죠. 세례 요한은 자기의 위치를 분명히 알았어요. 자기 자리를 분명히 알았어요. 그리고 주님만 섬겼습니다. 그 당시 적지 않은 사람이 세례 요한이 메시야이기를 기대하고 바라기도 했습니다. 추종하는 세력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이 메시야이십니다.”

거짓으로 얻은 권세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거짓으로 얻은 부귀영화도 복이 되지 않습니다. 진실이 가장 중요해요. 나 자신이 과대 포장되어지는 것을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경계해야 됩니다. 과장된 나를 기꺼이 거부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행동, 버려야 합니다. 교만하면서 겸손한 척하는 것도 큰 잘못이에요. 형편없는 사람이면서, 숨어서 온갖 죄를 다 짓는 사람이면서 거룩한 척하는 건 매우 나쁜 일입니다. 진실이 생명이에요. 과장된 나를 두고 분명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참 좁은 나라로 좁은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인데, 우리나라에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자기가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꾸 많아진답니다. 이상한 일이잖아요. 여러분 왜 하필 우리나라에 자기가 재림예수라고, 자기가 제2의 아담이라고, 예수는 실패했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으니까 자기가 진짜 구원자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이단이 매우 많아요. 구별해야 돼요. 여러분 중에서 사이비 이단에게 넘어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것만큼 가증스러운 죄가 없어요. 그것만큼 교만한 죄도 없고 무서운 죄도 없으며, 그것만큼 끔찍한 죄도 없어요. 우리는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분명히 말했어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진실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요한복음 123절 같이 읽겠습니다.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세례 요한의 자기소개 두 번째는 나는 소리에 불과합니다입니다. 소리는 자기 역할을 다하고 나면 사라지는 거예요. 소리는 뜻을 전달하고 나면 자기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를 소개하기를 나는 소리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나는 할 일 다 하고 나면 사라져야 할 사람입니다. 나는 사명을 감당하고 나면 없어져야 하는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자기를 소개했어요. 나는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사라져야 하는 사람입니다.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을 주목해야 됩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자기 인식, 자기소개입니다. 사실 세례요한은 대단한 사람이고 중요한 사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고,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했으며 구약의 선지자 중에서 엘리야 선지자처럼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자기 자신을 나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나는 할 일 다 하고 나면 사라져야 합니다그렇게 소개했어요. 모든 관심을 예수님께 집중시키기를 원했습니다. 모든 하나님 나라 일꾼이 된 자가 보고 배워야 할 일꾼의 태도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그런 분이 많아요. 젊은 시절에 누구보다 교회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고 충성하고 봉사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묵묵히 뒤에서 지켜봐 주고 박수 쳐 주고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시는 그런 분이 많아요. 하나님은 다 알고 계세요. 그런 분들이 사실은 소중한 분들이에요. 자기 공로를 주장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영광은 진실로 주님께만 돌리기를 원해요. 우리 교회도 그런 분이 참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주님을 섬길 때 기꺼이 외치는 자의 소리로 주님을 섬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최선을 다한 이후에 자신은 사라져야 해요. 최선을 다한 후에 사라져야 해요. 나의 공로를 주장하면 안 돼요. 사라져야 할 사람이에요. 그게 우리의 기쁨이요 행복이에요. 맡은 사명 충성스럽게 감당한 후에는 다 사라져야 하는 거예요. 주님만 남으셔야 돼요. 그게 우리의 기쁨이고 그것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우리도 다 사라지는 거예요. 할 일 다 하고 나서 사라지는 거예요. 이 땅을 살면서 열심히 살고 땀 흘리며 살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눈물 흘리며 살고 그러다가 우리는 사라지고 이 민족 가운데 오직 예수님이 주인 되셔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를 주장하면 안 돼요. 자기 공로를 주장하는 일에 너무 열심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의 칭찬에도 너무 목말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서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면 아멘으로 충분합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에게 넘쳐나기를 축복합니다. 세례 요한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요한복음 127절입니다.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세례 요한의 세 번째 자기소개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의 신발끈 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입니다. 문장이 좀 긴데, 요약하면 나는 예수님의 종노릇 하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의 종노릇 하기에도 너무너무 부족합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세 번째 자기소개입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 그분이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야 바로 그분이십니다. 나는 그분의 종노릇 하기에도 너무나 부족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이 주인공이십니다. 이게 세례 요한의 자기 인식입니다.

요한복음 330절도 같이 읽읍시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예수님은 점점 흥하여지시고 높아지셔야 되고, 나는 자꾸 쇠하여지고 나는 자꾸 더 낮아져야 합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자기인식이에요. 오늘 저에게도, 여러분에게도 세례 요한이 가졌던 그 믿음의 태도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내가 얼마나 충성했는데, 내가 얼마나 봉사했는데, 그런데 나를 몰라준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충성한 후에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게 기쁨이에요. 나는 자꾸 쇠하여지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높임을 받으시는 겁니다. 그게 우리의 기쁨이요. 그게 우리 행복이에요. 여러분에게 세례 요한처럼 사랑하는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고 말라기 선지자도 예언했으며, 예수님께서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최고라고 칭찬하셨는데 정작 세례 요한 자신은 자기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첫째,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나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좀 노릇하기에도 부족합니다. 이게 세례 요한의 자기 인식이에요.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모든 하나님의 일꾼들은 세례 요한에게서 일꾼의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저도 여러분도 세례 요한처럼 나는 주인이 아니고 종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종인데 종노릇 하기에도 부족하다고 우리 스스로를 진실로 인정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나간 자리에 하나님의 영광만 남고, 예수님만 높임을 받는 은혜가 가득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복입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9절을 다시 보십시오. 우리 한 번 더 읽겠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냈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 중에서도 예루살렘 산헤드린 공의회는 대()산헤드린 공의회입니다. 여기는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여기 종교재판장에 끌려 들어가면, 율법을 어겼다고 판결을 받으면 죽을 수도 있어요. 무서운 사람들에게 세례 요한이 내 뒤에 드디어 만왕의 왕이 오신다고 선포한 것은 사실상 목숨을 걸고, 순교를 각오한 선포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중심인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들을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는 너무나 두렵고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던 시대예요. 그때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쳐요. “만왕의 왕이 오신다. 구약성경이 예언한 메시야 그분이 오신다. 참통치자가 오신다.” 이렇게 외쳤다는 말입니다. 이건 순교를 각오한 겁니다. 목숨을 내놓은 거예요. 죽기를 각오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엘리야 선지자는 아합 왕과 맞서 싸웠죠.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 모두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과 맞서 싸웠어요. 바알과 맞서 싸웠어요. 엘리야도 사람인데 어떻게 두렵지 않았을까요? 엘리야도 사람인데 무서웠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 두려움을 이기고 자기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은 신약 시대를 열면서 그 당시 권력자들, 무시무시한 사람들인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들과 맞서 싸웠어요. 세례 요한은 헤롯 왕과 맞서서 싸웠어요. 세례 요한도 사람인데, 사람의 심장을 가졌는데, 어떻게 두렵지 않았겠어요? 세례 요한도 무서웠을 거예요. 세례 요한도 죽음 앞에서는 두려워 떨었을 거예요. 그도 사람인 거예요. 그렇지만 두려움을 이기고 자기의 사명을 감당했어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했습니다.

우리 모든 믿음의 사람은 두려움을 이겨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길을 떠날 때 어떻게 두렵지 않았을까요? 다 버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길도 모르는 곳으로 가는데,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서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어떻게 두렵지 않았을까요? 두려웠을 겁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치안이 좋지 않았잖아요. 길을 가다가 누구를 만날지, 어떤 도적떼를 만날지 알지 못하지만 길을 떠났어요. 두려움을 이기고 순종한 거예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사용하셨어요.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날 때 아브라함의 그 두근거리던 심장 소리를 여러분 한번 들어보세요.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떠나갈 때 어떻게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결과 물론 야곱이 잘못한 것도 있긴 하지만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도망쳐야 하잖아요.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떠나갈 때 루스 광야에서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떨지 않았을까요? 두려움에 아마 떨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고 애굽의 파라오를 찾아갈 때 가슴이 쿵덕쿵덕 뛰었을 거예요. 그도 사람인데 심장이 떨리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해 내는 겁니다. 엘리야가 바알과 맞서 싸울 때 두려웠겠지요. 어떻게 두렵지 않았을까요? 세례 요한이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파송한 조사단을 마주했을 때 가슴이 떨렸을 거예요. 두려워서 어쩔 줄 몰라 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믿음의 선진들은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믿음으로 이겨냈습니다. 믿음의 능력으로 이겨냈습니다.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건 믿음의 권세뿐이에요.

여러분에게 오늘 이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릴까? 세상이 우리를 두렵게 하지만 우리가 정말 두려워할 것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할수록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진실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 당시 헤롯 왕과도 맞서 싸우고,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들과도 맞서 싸우고, 무시무시한 사람들 앞에서 목숨 걸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예수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례 요한 당시에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당시 애국자들은 그런 생각을 했겠죠. 또 권력자나 기회주의자들은 내가 이 혼란할 때 잘해서 권력을 손에 잡아봐야지, 산헤드린에서 내가 한자리 차지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혼란한 시대에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예수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바로 그분이시다. 그분이 만왕의 왕이시다. 그분이 다스리시고 그분이 통치하십니다.’ 이걸 선포했어요.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우리를 살리고, 결국 우리나라를 살려낼 것입니다. 이 민족을 살릴 수 있는 힘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능력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는다면 우리는 낙심하면 안 돼요. 목숨 걸고 이 혼란한 시대에 내가 감당해야 될 사명은 무엇인가 생각하고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려도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복음 전하는 사명, 화평케 하는 사명이에요. 여러분은 복음으로, 예수님의 정신으로 화목하게 하고 화평케 하는 이 사명을 감당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의 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죽어 너를 살린다는 정신, 십자가의 도가 필요합니다. 나를 비워 너를 채운다는 정신, 십자가의 도가 그 어느 시대보다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벌은 내가 받을 테니 너는 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 십자가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교회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의 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냄으로써 이 민족 가운데 희망이 되고 소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너를 죽여 내가 살겠다는 세상의 정신으로는 우리 모두가 다 넘어집니다. 바라기는 서로 죽이겠다고 나서는 이런 현실을 우리 후손에게는 물려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요,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이 민족을 살릴 수 있는 희망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권능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정말 더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끊임없이 갈라치기 하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이런 나라, 이 상태 이대로를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 된 나라, 십자가의 도가 살아 있는 나라,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로우신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나라,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나라, 그래서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나라, 내가 죽어 너를 살리는 이 십자가의 정신으로 나라와 민족을 살려내는 나라,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나라,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믿음의 진리를 지켜가는 올바른 교회가 건강하게 살아있는 나라, 참으로 복되고 행복한 나라, 우리가 그런 나라를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더 예수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더 예수님 닮은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더 십자가의 도를 실천해 내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더 정신 차리고 믿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회개하기를 바라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더 기도하지 못했음을 정말 회개하기를 바라며, 십자가의 정신으로 세상을 살지 못했음을 더 회개하기를 바라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우리가 더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 가운데 다시금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희망과 소망의 빛이 가득하게 하는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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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요한복음 1:19~28)
  • 2024-12-16
  • 박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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