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요한복음 2:1-11)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예언한 메시야 바로 그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께서 메시야 바로 그분이심에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는데 세례요한을 통하여 말씀합니다. 세례요한을 통하여 나사렛 예수 그분이 진실로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야 바로 그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 유일한 그리스도이심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2장은 예수님께서 친히 메시야,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어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처음으로 행하신 이적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은 표적입니다. 신비하고 기이하고 놀라운 일을 이적이라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 뜻이 있어요. 그래서 표적으로 번역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갈릴리 가나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표적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 사건을 살펴보면 거기에 한 가지 메시지가 있어요. 예수님이 진실로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시다. 메시야 그분이심에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어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신비하고 놀라운 모든 일은 다 주님의 역사인가? 신비하고 기이하고 놀라운 모든 일은 다 성령님의 역사인가? 이 문제를 주의해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13장 22절 우리 같이 읽읍시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거짓 그리스도들이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도 있습니다.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도 이적과 기사를 행합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분별해야 해요. 신비하고 놀랍다고 해서 모두 성령님의 역사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해요.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도 이적과 기사를 행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이 행하는 목적은 미혹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구분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주관하시는 이적은 반드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냅니다. 성령님이 주관하시는 신비하고 놀라운 이적은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만 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만 남습니다. 그런데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교묘하게 흉내 내는 이적은 목적이 다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의 우상화가 목적입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의 영광은 없고 사람만 높임을 받는 이상한 일이 생기죠. 그렇게 성도들을 미혹하는 것이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이 행하는 이적과 기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신비하고 놀랍다고 해서 따라가지 말고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정말 예수님 따라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신비하고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시되 예수님 안에서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으로 신비하고 놀라운 일들만 경험하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복음 2장 11절을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을 표적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적은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한 일인데 표적은 뜻이 있는 신비하고 놀라운 이적을 의미하죠.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표적은 무엇입니까? 갈릴리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내신 사건입니다.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 당시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서 포도주는 가장 기본적으로 손님들을 대접하는 음료입니다. 이게 없으면 잔치가 안 돼요. 이게 없으면 잔치가 끝나는 거예요. 문제가 아주 심각한 것입니다. 잔치가 원망과 불평, 절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첫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셔서 부족한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부족한 걸 그냥 채워준 것만 아니라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어요. 그래서 잔치가 계속되도록 하셨습니다. 갈릴리가 가나에서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보여주신 이적은 무슨 표적일까요? 드디어 메시야가 오셨다. 드디어 메시야가 오셔서 천국 잔치가 회복된다. 드디어 메시야가 오셔서 하나님 나라 잔치가 다시 시작된다. 그것을 보여주시는 표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행하신 표적은 드디어 메시야가 오셔서 이제 천국잔치의 기쁨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천국잔치의 기쁨이 우리에게도 회복된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어느 민족에게나, 어디에서나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예수님의 주님 되심을 인정하는 곳에는 지금도 하나님 나라의 기쁨, 천국 잔치의 기쁨이 회복되고 천국 잔치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디에나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잃어버린 기쁨, 천국 잔치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웃을 수 있고, 고통하는 영혼들이 소망을 품을 수 있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천국 잔치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2025년 새해에는 여러분의 심령에 예수님께서 더욱 주님 되시고, 여러분의 삶 속에 예수님께서 더욱 주인공의 자리에 앉으심으로써 여러분의 삶에 천국 잔치의 신령한 기쁨이 더욱 충만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예수님께서 더욱 주님이 되시고 여러분 가정에서 주인공의 자리에 주님이 앉으심으로써 새해에는 여러분의 가정이 천국 잔치의 기쁨, 하늘의 신령한 기쁨이 더 충만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바라기는 정말 2025년 새해에는 우리나라, 우리 민족, 우리가 사랑하는 나라 대한민국 가운데 예수님께서 주시는 천국 잔치의 신령한 기쁨이 정말 충만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어둠이 물러가고, 슬픔도 물러가고, 절망도 물러가고, 우리 주님이 주시는 소망과 기쁨의 잔치가 이 민족 가운데 충만하게 되기를, 우리가 소원하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셨습니다. 여기에도 뜻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41절 같이 읽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요한복음 7장 52절도 읽습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마태복음 4장 15절도 보십시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갈릴리는 짓밟히는 땅이었습니다. 앗수르제국이 침입해 올 때도, 바벨론제국이 침입해 올 때도 갈릴리로 왔어요. 갈릴리는 큰 호수가 있어서 물이 넉넉하니까, 길목이니까, 군인들이 와서 다 짓밟고 지나가는 곳이라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갈릴리로 모여들었어요. 그래서 갈릴리를 사상이 혼합되고, 혼혈이어서 갈릴리 사람들은 순수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할 수 없다며 늘 짓밟히면서도 멸시받고 조롱받던 곳이 갈릴리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갈릴리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을 제자로 세우시고, 갈릴리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고, 갈릴리에서 제일 먼저 이적, 표적을 행하셨어요.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모든 흑암에 앉은 백성들도 천국 잔치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가 읽어봅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예수님은 갈릴리 사람으로 오시고, 갈릴리 사람을 제자로 세우시고, 갈릴리에서 제일 먼저 표적을 행하셔서 예수님께서 메시야임을 드러내시고 천국 잔치의 기쁨을 거기서 제일 먼저 열어주셨어요. 누가복음 4장은 이렇게 표현하죠. 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시작하셨나 하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억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라 말씀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예수님 믿고 영접하고, 오늘 우리도 천국 잔치의 기쁨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죄는 내가 지었는데 벌은 예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죄는 내가 지었어요. 죄 가운데 있는 나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람에 몸으로 오셔서 내 죗짐을 짊어지고 나를 속량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은총이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부어주시는 은혜 위에 은혜, 한량없는 은혜예요. 우리 모두 이 한량없는 은혜를 입은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그렇다면 감사해야 해요. 그렇다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해요. 그렇다면 더 뜨겁게 찬송해야 해요.
여러분, 한번 웃어보세요. 왜 웃음이 없어요? 세상만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 예수님께서 나에게 오셔서 나를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여러분 우리 이거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그 한량없는 은혜를 기억하고, 힘들어도 감사하고, 힘들어도 찬송하고 넘어지지 말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굳건하고 복되게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람으로 오셔서 갈릴리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복음을 전하시고 갈릴리에서 처음 표적을 행하셔서 천국 잔치를 거기서부터 다시 열어주신 것은 오늘 나처럼 힘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 눈먼 사람을 살리시기 위해서입니다. 혹 경제적으로 어렵습니까? 영적으로 어렵고 힘듭니까? 어딘가에 끌려 다니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까? 자유롭지 못하고 어떤 근심걱정에 눌려 있습니까? 2025년 새해에는 천국 잔치의 기쁨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시는 예수님을 더 가까이 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둠은 물러가고, 문제도 해결되고, 주님의 은혜 속에서 신령한 기쁨이 채워지고, 다시 천국 잔치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 5절부터 7절까지 같이 읽읍시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미리 말했어요. 그 잔칫집의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 하신 말씀은 성령님이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를 통해 이 말씀을 하게 하신 거예요. 제자들은 그 잔칫집의 하인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복 받았어요. 오늘 우리도 새길 수 있기를 바라요.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여러분,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올 한 해 이 말씀 순종하면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쉬운 건 아니에요.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씀을 주셨어요. 잔치의 순서상 맞지 않아요. 여기 항아리는 집 앞에 있는 큰 돌 항아리인데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6개예요. 돌 항아리 하나에 물을 채우려면 물통 두세 번 갖다 날라야 한다는 말이에요.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려면 물통으로 물을 최소 12번에서 18번을 길어 날라야 합니다. 잔치하는 데 얼마나 일손이 바빠요. 할 일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순서상 맞지 않는 일이에요. 그 돌 항아리에 있는 물은 잔치하러 들어올 때 이미 그 물로 손 씻고, 발 씻고 하는 물이라 잔치 순서상 맞지도 않고, 이치상 맞지도 않고, 지금 그 일에 순종할 겨를도 없어요. 잔칫집에 다른 할 일이 얼마나 많으냐고요.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그 말씀에 순종하는 거예요. 하인들이 그 말씀에 순종했어요. 그 결과가 어떻게 됐어요?
요한복음 2장 9절과 10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님께서 이제는 떠서 갖다 주라 하실 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으며, 만물을 지으신 주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시는 건 쉬운 거예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최고의 잔치가 다시 회복됐어요. 단지 부족한 것이 채워지는 정도가 아니에요. 주인이, 신랑이 크게 칭찬받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1절을 다시 보세요.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물이 변화여 포도주가 된 그 사건은 자체가 신비하고 놀라운 것이죠. 그런데 더 놀라운 일, 더 복된 일이 무엇입니까? 물 떠온 하인들은 알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가장 중요한 건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기쁨을 제자들도 이제 깨닫기 시작했어요. 믿기 시작했으니 ‘예수님이 메시야 바로 그분이시구나’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귀한것입니다. 가장 귀한 축복이 뭡니까?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되는 신비한 걸 경험하는 것도 귀합니다. 진짜 귀한 축복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고, 깨닫고, 믿는 축복입니다. 이게 가장 큰 축복이에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순종한 사람은 아는 거예요.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어떻게 된 일인지 물 떠온 하인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은 아는 거예요.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아요.
가장 중요한 건 예수님을 알게 된 거예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게 신령한 기쁨, 신령한 은혜예요. 올 한 해 예수님을 더 깊이 주님으로 깨달아 아는 이 신령한 축복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물 떠온 하인들은 아는 거예요.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기 시작했어요. 이게 큰 축복이에요. ‘주님 말씀하시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내가 순종하겠나이다.’ 여러분도 이 믿음으로 올 한 해 시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우리 순종합시다. 여러분, 솔직히 가슴에 손을 올리고 생각해 봐요. 내가 알고 있는 말씀인데 지금껏 순종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이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어요. 형제를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고 했어요. 화평하고 화목하라고 했습니다. 그거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 있죠. 이제 순종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구든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세요.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주님 말씀 따라 순종하고 살면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의 가정에, 날마다 천국 잔치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은혜는 지금도 일어나고, 문제가 해결되고 기쁨이 회복되는 역사는 지금도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실 때는 이유가 있었어요. 목적이 있었어요. 주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실 때 ‘순서상 맞지도 않고, 이치적으로도 맞지도 않고, 안 그래도 바쁜데 왜 이렇게 성가신 말씀을 하시나’ 생각했을지 몰라도 주님이 말씀하실 때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목적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큰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목적, 무슨 이유입니까?
첫째, 부족한 것 채워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부족한 것 채워주시라고 주님 말씀하시는 거예요. 포도주 채워주시라고 그냥 하신 게 아니에요.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려고요. 여러분, 우리 믿고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부족한 것 주님 채워주시려고 말씀하실 때 우리 믿음으로 “아멘” 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 축복의 통로로 쓰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집 하인들에게 항아리의 물을 채우라고 명령하셨어요. 안 그래도 바쁜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말씀하실 때는 그 하인들을 문제 해결자로 쓰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하인들 까닭에 집주인이 칭찬을 받잖아요. 그 하인들을 축복의 통로로 쓰시기 위함이에요. 주님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나를 축복의 통로로 쓰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믿고 정말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믿음으로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신령한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그 말씀에 순종하는 하인들은 아는 거예요. 정말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아는 거예요. 어떻게 된 일인지 아는 거예요. 그 신령한 기쁨, 신뢰감, 은혜를 주시려고 주님은 우리에게 오늘도 말씀하세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는 믿음, 말씀 따라가는 믿음으로 사셔서 정말 새해에는 날마다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리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거 우리 씻어버려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 세 가지를 씻어야 해요. 여러분, 항아리에 물을 채우기 전에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있죠? 지저분한 게 있지 않나, 그 사이에 뭐 나쁜 게 들어가 있지 않나, 살피고 비워내야 할 거 아니에요? 항아리에 물을 채우기 전에 먼저 깨끗이 씻어야 되잖아요. 뭘 씻어내야 될 것인가 하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뭘 씻어내야 할 것을 성경은 말씀해요. 세상의 것, 냄새나는 것, 더러운 것, 이 세 가지라고 성경이 말씀해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거 씻어내 버리고 항아리에 믿음을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육신의 정욕은 뭡니까? 인간의 죄성이 만들어 내는 모든 종류의 탐욕을 말해요. 합당하지 않은 성욕, 깨끗하지 못하고 정결하지 못한 성적인 욕망, 그거 육신의 정욕입니다. 그리고 과한 식욕, 이것도 육신의 정욕이에요.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 그래서 혈기 부리는 것, 이것도 육신의 정욕이이에요. 왜 사람이 혈기를 부리나요? 미움, 시기, 원망, 질투심, 이런 것 때문에 혈기가 올라와 모든 종류의 탐욕과 혈기가 육신의 정욕이에요. 여러분은 올 한 해 이것을 깨끗이 씻어 던져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인 안목의 정욕도 씻어서 벗어 던져버려야 돼요. 안목의 정욕이란 눈에 보이는 대로 가지려고 하는 소유욕이에요. 눈에 보이는 대로, 신령한 은혜보다 땅의 것을 더 취하려고 하는 생각이죠. 지나친 소비욕입니다. 존재의 기쁨보다 소유의 기쁨에만 눈이 멀게 되는 것, 이게 안목의 정욕이에요. 여러분은 새해에 소유의 복도 받으시기 바라지만 사람 덕분에 받는 복, 속사람의 복, 존재의 복을 더 크게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씻어 버려야 될 것 한 가지 더 있죠.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생의 자랑이란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마음, 자기 존재를 과시하고자 하는 모든 종류의 과시욕, 이게 이생의 자랑이에요. 이거 씻어 던져버려야 해요. 어떤 사람은 이러더라고요. 번쩍번쩍 금반지 반지 하나 이렇게 끼고 와서 이렇게 “아이고, 머리가 아프네. 머리가 아파,” 여기 금반지 끼고 다이아반지도 있으면 더 좋겠죠. “아이고, 머리가 아프네.” 뭐 한 번쯤은 그럴 수 있겠지만, 그게 인생의 목적이 되면 안 되겠죠.
여러분, 올 한 해 우리 육신의 정욕을 깨끗하게 씻어서 버리고, 안목의 정욕도 깨끗하게 씻어서 다 던져버리고, 이생의 자랑도 깨끗하게 씻어서 다 비우고 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제 채워야 해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채워야죠. 믿음으로 채우고, 순종으로 채워야 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뭘 채울까요? 오늘 우리도 항아리를 채워라는 이 말씀을 보고 우린 뭘 채울까요?
고린도전서 10장 31절 우리 같이 읽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장 23절과 24절도 같이 읽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맨 먼저 버려야 할 것 세 가지, 씻어서 내 버려야 될 것 세 가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제 기억하세요. 우리가 순종하여 채워야 하는 것 세 가지, 순종하여 채워야 하는 것 세 가지,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인가? 그렇다면 목숨 바쳐 충성하기 바랍니다.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이것이 덕이 되는가, 덕스러운 것인가? 믿음의 덕을 더하라고 말씀하세요. 덕스러운 일이라면 그 길로 걸어갈 수 있기 바랍니다. 덕을 세우는 편을 선택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남의 유익을 위하여! 나의 유익이 아닙니다. 성경은 가르쳐 주십니다. 나의 유익이 아닌 남의 유익입니다. 이 일이 남에게, 내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는가? 그렇다면 그 길로 가십시오.
이 세 가지를 우리가 채우고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덕을 세우기 위하여, 남의 유익을 위하여 여러분 올 한 해 이렇게 꼭 순종하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될까요? 신령한 기쁨을 아는 사람이 되어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처럼 천국 잔치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 되어 천국 잔치를 열어놓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 그렇게 살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웃을 일이 없죠. 그래서 오늘 새해 첫 주일 예배드리면서 하나님 앞에 제가 잠시 기도하기를 “하나님, 우리 성도들 마음을 좀 따뜻하게 해주십시오. 얼굴에 웃음꽃이 좀 피게 해 주십시오.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우리 성도들의 마음이 다 무겁고, 세상 사는 것이 어렵고 힘들 텐데, 새해 벽두에 우리 성도들의 마음을 좀 따뜻하게 해 주십시오. 마음이 좀 따뜻해져서 세상을 밝히고, 좀더 행복하고 복되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준비했는데 우리 선조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이야기 하나를 골랐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사에 아주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에 가면 금산교회가 있습니다. 김제평야의 금산에서 금광업으로 돈을 많이 번 아주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 부자의 가정에 조덕삼이라는 분이 태어났습니다. 그분은 너무 큰 부자라 집에서 일하는 머슴이 많았어요. 그 집에서 일하는 머슴 중 이자익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소년 시절부터 배가 너무 고파서 먹을 것만이라도 채우기 위해 그 부자 조덕삼의 집에 들어와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덕삼은 주인집 아들이라 큰 부자였고 이자익은 그 부잣집의 머슴살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를 통해 예수님을 알았고, 예수님을 믿었으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 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주인과 머슴이 같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자였던 조덕삼의 집 사랑채에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금산교회가 거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한 50명 정도 되었을 때 교회에서 처음으로 장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교회 재정의 거의 전부를 담당하고 있던 조덕삼은 그 금산교회 초대 첫 장로가 될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투표를 했는데 놀라운 일이 생겼어요. 그 조덕삼보다 조덕삼의 집에서 일하는 머슴 이자익의 표가 더 많이 나왔습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풀기 어려운 문제였어요. 성도들이 긴장하고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이제 큰일 났다. 교회가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 교회 재정을 거의 모두 담당하고 있는 조덕삼이 장로가 안 되고 그 집 머슴이 장로가 되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나?’ 그 당시로서는 앞이 캄캄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교회 문을 닫겠구나!’ 다들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덕삼이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나? 어떻게 하는 것이 덕을 세우는 일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나의 유익이 아닌 교회의 유익을 위하는 것인가? 이걸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고는 성도들 앞에 서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이자익 장로님을 잘 받들어서 교회를 더 잘 섬기겠습니다.” 성도들이 감동하고 박수를 쳤어요. 그다음에 그 조덕삼도 장로가 됐습니다.
조덕삼 장로가 보니까, 이자익 장로가 자기 집에서는 머슴이지만 교회에서 보면 믿음도 더 좋고 지도력도 있고 머리도 뛰어나고 그 리더십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조덕삼 장로가 이자익 장로에게 장학금 전액을 부담하고 평양신학교에 보내 신학을 공부하게 했습니다. 그 이자익 장로가 평양신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목사 안수를 받게 됐는데. 그 후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목사를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모시게 됩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로 잘 섬겼습니다. 교회가 놀랍게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자익 목사는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의 제13대 총회장이 되었어요.
놀라운 일이죠. 가슴 따뜻한 이야기죠? 그럼 한번 웃어보세요. 한번 웃으시라고, 마음이 좀 따뜻해지시라고 제가 이렇게 정성껏 이야기했습니다. 감동적이죠? 바라기는 올 한 해 우리나라 대한민국 땅에 이런 일이 많아지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가정에도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 우리 한국 교회 안에도 이런 기쁨의 역사가, 천국 잔치의 기쁨이 충만하게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