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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느니라(요한복음 16:25~33)

  • 박재역
  • 2025.04.06 오후 07:59

어제 세례 입교하는 중고등부 학생들 문답식이 있었습니다. 제가 문답을 하면서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세상 사는 것이 어떠냐고 질문했어요. 힘들다고 말했어요. 친구 관계도 힘들고, 학교 공부하는 것도 힘들고, 우리도 공부 잘하고 싶은데 다 잘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힘들대요. 아이들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어제 들었습니다.

세상 사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세상에는 환난과 풍파가 많습니다. 특별히 믿음 지키고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고난도 핍박도 더 크게 찾아오는 법입니다. 우리 인생의 걸음걸음 앞에 어렵고 힘든 일들이 얼마나 많이 놓여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힘든 세상 사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세요. 여러분은 힘들어도 근심하지 말고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시고, 그다음은 주시는 대로 감사하고 그렇게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넉넉히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어요.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근심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우리가 배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집에 우리가 거할 곳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가셔서 하나님 아버지 집에 우리가 머물 자리를 구체적으로 봐주십니다. 우리 주님이 때가 되면 다시 우리에게 오시는데 그때까지는 성령님이 우리를 감동감화하시고 가르쳐주시며 이끌어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살고 죽음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근심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해 주신 말씀이에요. 예수님께서는 너희들 근심하지 말라 말씀하시고 근심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한 말씀으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632절 같이 읽겠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어요. 이제 때가 되었다. 내가 혼자 될 때가 되었다. 예수님은 무서운, 외로움, 무서운 고난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어요. 그렇지만 예수님은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유가 뭡니까?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예수님도 성부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는 믿음으로 그 고난의 시간, 처절한 외로움의 시간을 견디고 이겨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어요. 이제 가룟 유다는 배신자가 될 것이고, 예수님은 잡혀가실 걸 알고 계셨어요.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새벽이 오면 예수님은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고. 채찍에 맞고 고난의 길을 걸으신 다음에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게 됩니다.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어요. 사랑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침을 뱉고 돌을 던질 텐데, 그 아픔이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이 길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오셨어요. 예수님의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구약성경에서부터 예언되어진 예수님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오셔서 임마누엘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근심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느니라. 여러분도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넉넉히 승리하고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519절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복음 1521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로마제국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박해하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죽이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배척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로마제국은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아니래요. 예수님만이 만왕의 왕이시라고 고백해요. 그러니까 로마제국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싫어해요. 로마제국은 계급사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주인이든 종이든 같이 형제자매라고 말해요. 그러니까 로마제국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해요. 죽이는 겁니다. 로마제국은 로마를 지상낙원이라고 말해요. 로마 황제 가이사(시저, 카이사르)가 다스리는 이 나라 로마제국의 강력한 힘으로 이루어내는 그 평화의 나라가 지상낙원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다. 예수님이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거기가 본향이라고 말하거든요. 그러니까 로마제국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는 겁니다. 잡아서 핍박하고 박해하고 죽이고, 그래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고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어요. 예수님 당신께서도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로 가시지만 이제 남겨놓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무서운 고난의 길, 핍박의 길로 걸어가야 한다는 걸 예수님은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한다. 너희도 고난당하게 될 거야. 너희들도 핍박받게 될 거야. 그러나 환난을 당하겠지만, 너희는 담대해야 한다. 나의 이 말을 미리 너에게 전하는 것은 너희들이 내가 전한 이 말을 기억하고 환난을 이겨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세상을 이겼노라 내가 세상을 이긴 비결은 뭐냐 하면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 말씀을 들려주시고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그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세상은 너희를 핍박할 것이다. 소속이 다르기 때문이야. 너희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고 너희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야. 그러니까 세상은 너희들을 몰라. 하나님 아버지도 몰라. 세상 사람들은 너희를 핍박한다. 소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환난을 기쁨으로 감당하여라. 주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세요.

 

요한복음 1633절 같이 읽겠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도 십자가의 길로 가시지만 예수님의 제자들도 십자가의 길로 가야 한다는 걸 예수님은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내가 너에게 이것을 미리 말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환난을 당하겠지만, 담대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그 말씀 남기시고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로 가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의인에게는 고난이 많습니다. 제대로 믿음 지키고 살려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많아요. 신앙생활 하면 권한이 없어요. 뭐 회사 생활하면서 술도 한잔 같이 적당히 하고 제사상 앞에 그냥 적당히 절도 같이 하고 그러면 핍박이라는 게 없어요. 바르게 믿음 지키려고 하면 핍박이 있어요. 고난도 당합니다. 여러분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고난의 길, 환난의 길이라 하더라도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믿음의 길로 걸어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그 길로 가셨는데 우리가 편안한 길로 가면 되겠습니까? 예수님 믿으면 만사형통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예수님 믿으면 만사형통 아니고 더 환난과 고난과 핍박이 많아요. 그런데 그 환난과 고난과 핍박을 통해 더 예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게 돼요. 그게 축복이에요. 여러분은 환난을 당할지라도 끝까지 믿음 지키고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심을 신앙으로 분명히 고백하고 예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는 그 기쁨, 그 신령한 기쁨을 누리고 살아가는 올바른 믿음 생활을 하는 성도들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오셨어요. 임마누엘로 세상과 싸워 이기고 승리하셨어요. 오늘 여러분의 가슴속에도 임마누엘 은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하나님이 언제나 내 곁에 계신다. 이 믿음이 여러분의 심정에도 더 굳건하게 뿌리내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요한복음 1620절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예수님은 외롭게 혼자 남게 될 것을 알고 계셨어요. 이제 잡혀가시고, 매 맞으시고, 고난당하실 것을 알고 계셨어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기쁨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평강을 말씀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서도 기쁨을 말씀하시고 평안을 말씀하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그 믿음이었습니다. 그 생각이었어요. 임마누엘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세상을 이기셨다. 여러분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근심하지 않아도 되는 궁극적인 이유는 임마누엘 은혜 덕분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구나, 그게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더 귀하고 소중한 것들이 많아요. 우리 인간의 눈에 하나님은 안 보이는 건 당연해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존재인 우리 인간의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당연해요. 그러나 하나님은 만물을 지어놓고 움직이고 계세요. 성경에서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계심을 말씀해요. 여러분 그 하나님을 분명히 믿으시고,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하심을 여러분도 확신하는 믿음으로 믿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근심하지 않아도 되는 궁극적인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주님 여러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고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이냐? 예수님께 꼭 붙어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이 가신 그 길로 우리도 가면 돼요. 예수님께 꼭 붙어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로 우리고 따라가면 돼요.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은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말씀하시면서 가신 십자가의 길이에요. 우리도 그 길로 가면 부활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이에요. 예수님께 꼭 붙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체험하고 경험함으로 세상을 이기고 살아가는 길이 우리가 가야 할 바로 그 길입니다.

 

요한복음 154절 말씀 같이 읽읍시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소경 바디매오는 주님께 붙어 있으려고 고함을 질렀어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사람들이 꾸중해요. “너 같은 소경 거지, 냄새나는 게 어떻게 랍비 예수 선생님의 이름을 부르느냐? 썩 꺼져라.” 그러나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만 했어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더 고함을 지릅니다. 바디매오는 간절히 예수님께 붙어 있기를 원했습니다. 바디매오의 마음을 예수님이 아시잖아요. 드디어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딱 붙어 접붙임이 되는 순간 바디매오의 눈이 열렸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꼭 붙어 있으면 됩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부정한 여인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속에 포기할 수 없는 게 있었어요. 나도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지, 예수님 만나야지, 그건 포기할 수 없었어요.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너무 사람들이 많아요. 그렇지만 필사적으로 예수님 곁으로 다가가요.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어요. 마침내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을 때 주님이 말씀하시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아.” 예수님은 아시는 거예요. 예수님께 젖붙임을 받는 그 순간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즉시 구원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살고 예수님께 떨어져 있으면 죽는 거예요.

저는 어릴 때 접붙이기 하는 모습을 하도 신기해서 가만히 보고 있었거든요. 접붙이기 하는 비결은 딱 하나예요. 단단히 매는 거예요. 단단히 꽁꽁 붙들어 매는 거예요. 여러분은 예수님께 대충 붙어 있지 말고 철저하게 꼭 붙어 있어서 예수님의 그 생명력이 여러분에게 그대로 임하게 되는 그런 복을 누리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간당간당 하는 사람, 뭐 어떤 때는 예수님 믿는 사람이고, 어떤 때는 세상 사람이고, 지금 간당간당 떨어질까 말까 하는 사람 있잖아요. 예수님께 꼭 붙어 있는 하나님 나라 사람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큰 회사 빌딩에서 청소 일을 하시는 할머니 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는 제법 부자로 살던 분입니다.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사업이 부도가 났어요. 외환위기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무너졌습니까? 잘나가던 남편이 외환위기 때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는데 여기저기서 문제가 생기더니, 회사가 부도났어요. 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버티고 버티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병들어 죽고 말았어요. 아들도 어느 날 행방불명되었어요. 그 할머니는 자신은 또 몸이 병들어 약해지고 있었어요.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큰 회사를 경영하는 남편의 친구를 찾아갔어요. 어떡하든지 내가 살아야 하니까, 무슨 일이든 좋으니 일을 좀 하나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러니까 세상 떠난 남편 친구가 청소하는 일자리를 하나 만들어줬어요. 회사에서 열심히 청소하는 일을 하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힘들고 얼마나 앞이 캄캄했을까요? 그런데도 주님 이름 부르면서 늘 찬송하면서 그 건물 청소하는 일을 했어요.

연말에 우수 사원을 뽑는 투표를 했는데 그 할머니가 1등이 된 거예요. 그 할머니에게 소감을 한마디 말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렇게 말했대요. “나는 잘 나가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부도난 뒤 세상을 떠났고, 아들도 행방불명되었고, 나도 원인을 모르는 병으로 몸이 아프고 그렇지만 여기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날마다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살리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너는 살아야 한다. 네가 아무리 힘들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3일만 참고 믿음으로 인내해 봐라. 살 길이 열린다. 나도 3일은 무덤 속에 있었다. 그래서 저는 힘들고 너무 어려워서 나도 세상 그만 살까 생각이 들 때 3일만 기도하고, 인내하고 기다리면 또 힘이 나고 또 세상 살아갈 용기가 생기고 그렇게 나 지금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나를 우수사원으로 뽑아주시니 참 감사한데, 이것은 내 삶을 이끌어 가시는 예수님 덕분입니다.” 그렇게 소감을 말했대요. 여러분 아무리 세상 사는 것이 힘들어도 진실로 예수님께 꼭 붙어서 예수님 나의 주님 되심을 고백하면서 살아가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세상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어려운 이야기 조금 하겠습니다. 범신론이 있습니다. 범신론은 힌두교와 불교의 신론입니다. 범신론은 주장하기를 삼라만상이 다 신이라고 주장해요. 그런데 드러난 삼라만상은 본질이 아니고 현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해요. 삼라만상은 드러난 것인데, 드러난 현상에 불과한 것인데, 본질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 열반이고 해탈이라고 주장합니다. 삼라만상에서 벗어나는 것, 이 영겁의 윤회를 끊어내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범신론자들은 이 세상 삼라만상 현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무아의 상태, 본질의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행을 하고 수도하고 자기 몸을 괴롭혀요. 본질을 찾는 것이 열반이고 해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도를 닦고 고행을 하는데 얼마나 비참한지 몰라요. 쇠꼬챙이로 몸을 찔러요. 뜨거운 숯불 위에 올라가서 몸이 불타는데도 그걸 참고 견뎌요. 무거운 물건을 머리에 이고서 그걸 참고 견뎌요. 그렇게 본질을 찾겠다는 거예요. 범신론은 결국 자력 구원론입니다. 범신론에는 초월적인 신이 없어요. 범신론은 인간 스스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죠. 그런데 이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구원을 말하는 거예요. 범신론은 옳지 않습니다. 가련한 인간, 불쌍한 인간을 더 불쌍하게 만드는 이론입니다. 옳지 않아요.

범신론은 힌두교와 불교의 신론인데 이신론이라는 것이 또 있어요. 이신론은 인간의 이성으로 인식 가능한 신만 믿고 인정해요. 이신론은 창조주의 초자연적인 섭리를 인정하지 않아요. 신은 인간의 자연적인 인식 능력인 인간의 이성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신만 믿자. 이게 이신론이에요. 좀 어렵죠? 그래서 자연신교라고 하는데 동시에 이신론에서 말하는 신은 창조의 신인 것은 맞는데 너무 멀리 있는 신이에요. 마치 이런 거예요. 신이 시계와 같은 우주를 만들어 놓고 태엽을 감아놓고 그리고 던져 놓았다는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신은 세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시계를 만들어 놓고 태엽을 잔뜩 감아놓고 던져놨어요. 그대로 그냥 이 우주 만물이 움직이는데 때가 되면 끝난다는 거죠.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신이 있기는 한데 이 세상을 만들어 놓고 이 세상에 개입하지는 않는다는 사상입니다.

결국 이신론은 숙명론으로 갑니다. 이미 다 결정되어 있다는 사상이에요. 이슬람교가 대표적인 이신론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는 일신론 유신론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신론입니다. 그래서 이슬람에서는 한마디면 다 끝나요. “인샬라.” 알라의 뜻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다 끝나요.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신론은 결국 숙명론입니다. 이슬람의 신 알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신이에요. 인간은 절대적으로 순종만 해야 하는 신이에요. 이슬람이 주장하는 알라 신은 사랑이 없어요. 이신론자들에게 신은 너무 멀리 있는 신이어서 인간 스스로 길을 찾아야 돼요.

이신론자들은 스스로 신을 찾아가야 하는데 그 길이 막연해요. 그런데 이슬람교에서는 한 가지 특별한 길이 있다고 말해요. 그게 뭐냐 하면 알라를 위해서 스스로 자기 목숨을 버리면 된대요. 스스로 알라에게 자기 목숨을 바치면 고난 없이 바로 신 앞으로 간대요. 그리고 그것도 예쁜 여자들과 결혼도 할 수 있대요. 그렇게 주장하니까 이슬람교의 많은 청년이 전쟁터에 나가서 전사가 됩니다. 목숨 걸고 싸우다가 죽는 것이죠. 모두 다 올바른 구원론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인간을 더 안타까운 인간으로 만드는 것뿐이에요. 범신론이나 이신론은 올바른 신론이 아니고 올바른 구원론도 아닙니다. 인간을 더 슬프게 만들고 인간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잘못된 이론일 뿐입니다.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존재 양식인데 하나님의 신비한 존재 양식을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어요. 성부와 성자, 성령 삼위로 구분되나 분리되지는 않습니다. 완전한 연합,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는데, 그 존재가 어떻게 가능한지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알 수 없어요. 삼위로 계시는데 근본은 동일한 본체이시며 동등하십니다. 참으로 신비하죠. 삼위일체는 우리 피조물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연합이요, 신비한 사랑인데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방식이래요. 성부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성자 예수님은 완성하시고, 성령님은 구원의 효력을 적용하십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이 십자가의 도예요. 누군가는 죗값을 치러야 하는데 삼위일체 하나님이 담당하시기로 결정하셨어요. 성자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이 실제로 이 땅에 어린양으로 오셔서 완전한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우리 인류의 죗짐을 다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구원의 효력을 완성해 놓으셨는데 예수님이 완성해 놓으신 그 구원의 효력을 성령님이 오늘 우리 각자에게 적용하세요.

그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방식이 하나님의 지혜, 십자가의 도예요. 세상 그 어디에도 이런 지혜는 없습니다. 내가 채찍에 맞아 너희들을 고칠 거야. 내가 죽어 너희들을 살려낼 거야. 이게 십자가의 도란 말이에요. 세상 그 어디에도 이런 지혜는 없어요. 세상 사람들은 이걸 생각지도 못한대요.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늘 감사하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지금 함께 계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집사님이 갑자기 큰 어려움을 당했어요. 사업도 힘들고 사람에게 배신까지 당하고 보니 세상 살고 싶지 않은 거예요. 몸도 병들고 너무나 힘이 듭니다. 낙심이 되어서 아파트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이라도 좀 마시자. 그렇게 아파트 창문을 열고 기대어 서 있는데, 사탄이 다가와서 속삭이는 거예요. ‘너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라. 그렇게 고달픈 인생 살아서 뭐 하냐? 죽어라. 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끝날 거야.’ 여러분 분별해야 돼요. 마귀사탄은 늘 힘들 때 다가와서 너 그만 살고 죽으라고 말해요. 이런 세상 그만 끝내라고 말이에요. 그게 사탄이 하는 짓이에요. 사탄은 언제나 우리 곁에 살금살금 다가와서 우리의 생명을 도둑질해 가요.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존재, 그 사탄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사탄이 하는 일이 그런 거예요. 우리의 생명을 도둑질하고 빼앗고 죽이는 것이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성도는 분별해야 돼요. 사탄은 물러가라 산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쫓아내고 물리쳐야 될 존재예요. 우리가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걸 기억하세요.

이 집사님이 너무 마음이 답답해서 이번에는 시원한 강가로 나갔어요. 강가로 가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또 소리가 들려요. ‘강물로 들어가라. 힘든 세상 그만 살고 그냥 여기서 인생 끝내라. 강물에 몸을 던져라. 살아서 뭐 하냐? 죽어라.’ 사탄이 다가와서 또 속삭이는 거예요. 큰일 날 뻔했어요. 사탄의 목소리를 듣고 그 길로 따라갈 뻔 했어요. 그런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가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집, 예배당에 올라왔어요.

예배당에 들어서는데 그때부터 눈물이 뜨겁게 쏟아져요. 여기에 털썩 주저앉아서 기도하는데 신비하고 놀라운 은혜가 심령을 감싸더래요. 나는 너를 살리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했다. 너는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살라고 말씀하시더래요. 사탄은 너 힘든 세상 그만 살고 죽으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너는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래요. 내가 너를 살리려고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지 않았느냐? 그러니 너는 살아야 돼. 바르게 살아야 돼. 예수님은 살라고 말씀하시더래요. 그래서 뜨거운 눈물을 폭포수같이 흘리고 나니까 세상 두려운 게 없더래요. 지금 잘 살고 계세요.

성도 여러분, 마귀사탄의 음성은 분별하여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고달파도 예수님 의지하고 주님 음성만 듣고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지금 고난주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을 앞두고 여러분 지금부터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나도 그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승리했다. 너희도 그 믿음으로 세상과 싸워 이기고 승리해라.”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이 말씀을 여러분 마음에 꼭 새기고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죠? 마르틴 루터의 제자들이 루터에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두렵지 않습니까? 가톨릭과 싸우는 것이 목숨 걸어야 하는 일인데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루터가 이런 말을 했대요. “나도 목숨이 하나인데 왜 두렵지 않겠나. 그런데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사탄이 나에게 찾아와서 내 인생의 문을 똑똑 두드리면서 이 집에 루터가 살지요? 이 집이 루터의 집이 맞지요?’ 그러면 이전에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었으니까, 내가 문을 열고 나가서 이 집의 주인은 나 루터요, 그러면 그때는 내가 항상 마귀사탄에게 패하고 패배자가 되고 말아. 언제부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바뀌었어. 내 인생의 주인이 나 루터가 아니고 예수님으로 바뀌었어. 사탄이 찾아와서 이 집의 주인이 루터가 맞지요? 그러면 언제부턴가는 예수님이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나가서 아니요, 이 집의 주인은 나 그리스도 예수요.’ 그러면 마귀사탄은 놀라서 도망을 가지. 그래서 내가 이 길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 거야.”

주인이 바뀌었대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주인은 지금 누구입니까? 진실로 예수님을 여러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계신가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될 때 난 힘이 없어요. 마귀에게 진다고요. 내 인생의 주인을 정말 주님으로 모시고 살면 어떤 환난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대로 우리에게는 임마누엘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 임마누엘의 은혜를 의지하고 붙들고 힘들고 어려운 세상도 넉넉히 이기고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귀한 백성들 되기를 예수님 믿음으로 축원합니다.




  •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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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느니라(요한복음 16:25~33)
  • 2025-04-06
  • 박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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